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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03

고개를 숙인 채 눈동자만을 들어 슬그머니 눈치를 보는 아르마디를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이 작자는 자기가 잘못한 게 뭔지 알고 있을까.

아마 모르겠지. 지금도 내게 잘못한 것에 대해서나 생각하고 있지 않으려나.

“뭘 잘못해서 내가 화를 낸다고 생각해?”

어떤 대답을 할까 궁금해서 질문을 했더니 아르마디가 더듬더듬거리다 간신히 말을 자아냈다.

“루. 루시를 이용한거요.”

“그건 물론 잘못한 일이지만 정상참작이 가능해. 내가 있어서 이 결말에 도달한 거잖아?”

“어. 그럼.”

“다른 거 말해봐요.”

“메스가키 스킬에 대한 거라면 그것도 방법이 없었어요. 제 힘이 약해진 상황에서 당신에게 기억을 부여하다 보니 아그라를 막을 수가 없었거든요.”

“…아그라?”

“그는 제가 당신에게 기대를 건다 생각하고 당신에게 저주를 걸었습니다. 당신의 ‘행복’을 끝내버렸죠. 제가 할 수 있었던 건 저주가 단순한 저주로 남지 않게 비트는 것 뿐이었습니다.”

“마마의 개인적인 취향이 아니었어?”

“제가 무엇 때문에 제 귀여운 딸에게 그런 저주를 걸어야 하나요!”

“그야 마마 마조잖아.”

“전혀 아니에요!”

아니라고? 난 여태까지 네가 개인적인 취향을 불어넣은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르마디가 루시의 마마였다는 걸 알았을 때보다도 더 큰 충격에 할 말을 잃었더니 아르마디의 얼굴이 점점 더 붉어져갔다.

“여태 그렇게 생각하고 계셨나요?!”

“당연하지. 마조변태가 아니고서야 자기 딸한테 바니걸 의상을 입힐 리가 없잖아.”

“왜곡하지 마세요! 제가 루시한테 그 옷을 강제로 입힌 적은 없잖아요!”

“그치만 벌칙에는 대놓고 명시했잖아. 그것도 엄청 변태같고 음흉한 어투로.”

“…그건.”

“그건?”

“그. 루시가 질색하면서 곤란해하는 게 귀여워서.”

“뒈져버려. 썩을 변태주신.”

“죄송합니다…”

아르마디는 단순히 팔불출인 바보 엄마였단 소리인가.

음? 잠시만. 지금 내가 입고 있는 갑옷에 대한 계시를 준 것도 아르마디잖아.

이 정신 나간 갑옷을 입힌 작자가 음흉한 의도가 없었다고 해봐야 믿음이 안 가.

눈가를 좁힌 채 말없이 아르마디를 노려봤다. 그러자 아르마디는 단어가 되지 못한 외마디 말들을 내뱉다가 귀까지 붉게 물들이고서 고갤 숙였다.

“솔직하게 말해봐. 변태까마귀한테 사진이나 그림 요구한 적 있어. 없어.”

“이. 있습니다.”

“압수. 나중에 가진 거 다 내놔.”

“잠깐만요! 그건 루시랑 만나지도 못하고 대화할 수도 없어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하나 둘 모은 거라고요!”

“아. 그래? 그럼 거기에 처박혀서 사셔. 나랑 만날 생각은 하지 말고.”

“…죄송합니다. 오늘 내로 다 제출하겠습니다.”

하아아. 주신이란 작자가 이 꼴이니 얼빠여우나 변태사도가 천벌을 안 받지.

“으으으. 루시가 너무 무서워요. 어렸을 때는 좀 더 귀여웠었는데.”

“그 땐 마마가 가면을 잘 쓰고 있었잖아. 이렇게 답없는 여자란 걸 알았다면 그 때도 안 귀여웠을 거야.”

‘마마 너무 좋아!’를 외치던 과거의 루시, 그러니까 내가 너무 불쌍하다.

마마의 실상이 이런 줄 알았다면 그렇게까지 슬퍼할 일도 없었을 텐데.

“파파는 이 꼴인 거 알아?”

“이 꼴이란 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슨 말을 해도 놀라진 않으실 걸요.”

“용케도 숨겼네.”

“그 시절엔 루시에게 믿음직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까요. 엄청 노력했답니다.”

아르마디는 애써 웃음을 지었지만 정작 그녀의 말 속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새겨져 있었다.

자신의 무력함 탓에 저주를 받게 된 나를 보며 이 유악한 여성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대충 알겠네.

그래서 이쪽 관련해선 더 뭐라고 못 하겠다. 내 사춘기는 진즉에 지나버렸으니까.

아쉽다. 혈기가 왕성한 시절이었다면 남 사정이고 뭐고 일단 지랄을 했을 건데.

“앞에 말한 건 다 알겠는데 잘못한 게 더 있거든? 빨리 말해봐.”

“여기서 더요?”

“말하기 싫어? 마마가 아니라 다른 호칭으로 불러줄까?”

“말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생각나는 건 많아요! 그런데 하나 같이 앞서 말한 것과 결이 비슷해서.”

“흐으응. 그러니까 마마는 자기가 잘못한 것도 제대로 모르는 허~접이란 거네?”

“그…렇습니다.”

“만날 위에서 변태마냥 날 관음했으니까 허접이 부탁할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지? 모른다고 하기만 해봐. 아줌마라고 불러줄 테다.”

“네에. 맞아요. 루시 말대로 전 무능한 개허접이에요. 그러니까 제발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건지 알려주세요.”

시키지도 않았는데 바닥에 머리를 박는 아르마디를 보고 있자니 옅은 죄책감이 마음에 새겨졌다.

어. 음. 이렇게까지 하길 바란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여기서 약하게 나갈 순 없어!

이번에 아르마디가 잘못한 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니까!

내가 아르마디에게 진지하게 열이 오른 건 나에 대한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물론 거슬리는 구석이 많고 맘 먹고 괴롭히겠다 생각한 부분도 많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너도 한 번 당해보란 식의 장난스런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코 진지한 분노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내가 아르마디의 이야기를 듣다가 제대로 석이 나간 건 그녀가 자신이 한 말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마의 말씀을 감명깊게 들은 내 주변 사람들을 말야. 나 혼자 모든 걸 짊어지지 말아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했어. 나의 희생이 다른 이들의 고통이 될 수 있다고. 그러니 모든 걸 짊어지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시켜 달라고. 함께 아픈 길이 때로는 덜 아픈 길일 수도 있다고.”

때론 가장 이기적인 것이 가장 이타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부담을 느낄 것을 알면서도 솔직하게 도와달라 말하는 것이야말로 타인을 위하는 길로 변모하는 순간이 존재한다.

바보에 멍청이인데다 눈치도 없었던 나는 주변 친구들이 눈물을 흘리고 나서야 간신히 이에 대해 알게 됐지.

“근데 마마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 대해 조금도 관심이 없어보이네?”

허나 이 말씀의 장본인인 아르마디는 자신의 말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

자기 혼자 모든 걸 감내하려 했으며, 홀로 모든 고민을 끝마친 후에 제멋대로 선택을 해버렸고, 그 뒤에도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고자 했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어 준 이들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선 고민하지도 않은 채.

“마마는 내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들어주길 바랐지. 내 생각을 물어본 적은 없어.”

주신과 나 사이의 관계는 일방적이었다.

아르마디는 언제나 내게 나아갈 길을 제시해줄 뿐 내 생각을 묻지 않았다.

“페이비나 다른 독실한 성직자들에게도 마찬가지야. 그 멍청이들이 제멋대로 오해하는 동안에도 마마는 그걸 바로잡으려 한 적이 없어.”

아르마디는 자신을 신앙하는 사제들을 의도적으로 방치했다.

교황이 머리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성직자들이 타락한 것도 아니거늘 그들의 협조를 구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다른 신들에게도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은 적이 없잖아. 쉰내 나는 역사덕후조차도 아무것도 모를 정도니까 말 다했지.”

자신과 비슷한 격을 지닌 신들조차도 아르마디에게 있어선 신용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계획을 공유하지 않은 채 홀로 모든 걸 떠안으려 했다.

“하나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지만 그래도 아예 이해를 못 해줄 건 아냐. 수많은 실패를 반복하면서 꺾여버렸을 수도 있으니까. 그치만, 그치만 말야. 최소한 할아버지랑 그 동료들한테는 뭔가를 알려줬어야지. 신화의 시대를 끝내기 전에 말 한 마디 정도는 건넬 수 있는 거잖아.”

신화 시대의 영웅들은 단 한 번도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었던 존재를 잃었고, 쓰러트려야 할 존재를 방치하게 되었으며, 혼란스러운 대지를 수습하느라 제대로 된 휴식조차 취하지 못했다.

그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가.

그저 세상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왜 그런 취급을 당해야하냐고.

세상을 구원한 영웅들이 왜 여태까지 자신들의 미련을 떨치지 못한 채 이 대지에 남아있어야 하냔 말이야!

“이딴 짓을 저지른 주제에 사과 한 번 제대로 안 하고, 또 다시 희생을 강요하는 게 주신이 할 일이야?”

얼굴을 창백히 물들인 아르마디는 내 질문에 차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정말 자기가 잘못했단 자각조차 없었던 거구나.

하아아. 이런 멍청함도 유전이 되는 건가.

내가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고 멍청한 짓을 반복했던 게 아르마디의 딸이여서 그랬던 거라니!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머리에 열이 올라!

“제대로 사과하고, 제대로 보상해. 새로운 생과 평안 같은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영웅이 영웅일 때 행복할 수 있도록 만들란 거야. 개허접주신이었을 때라면 모를까. 힘을 되찾은 지금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잖아.”

“…루시의 말이 옳습니다. 태엽이 감겨진 뒤의 보상은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할 테니까요.”

*

“그래서 마마한테 사과를 시키러 왔어. 우리 마마가 멍청이에 무능하고 바보같지만 그래도 사람은 착하거든. 그냥 생각이 없는 바보일 뿐이야. 알려주면 잘해.”

분위기가 다소 심각해졌다 싶어서 일부러 장난을 쳐봤지만 용사 일행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가라드도. 에르기누스도. 용사도. 심지어 할아버지마저도. 다 크다 못 해 죽을 날을 기다려야 할 할배들이 하나 같이 울음을 참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상당히 부담스러운데.

좋아! 도망치자! 어차피 여기서 내가 할 일은 다했잖아!

빨리 돌아가서 일을 마무리 지어야지! 응!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치던 도중 루네비아가 날 끌어안아서 들어올렸다.

“걱정마세요. 알른 영애. 다른 분들께서 잘 해주고 계시거든요. 여기에서 편하게 쉬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건 네 생각이지! 닭장 아줌마!”

“루네비아.”

“그렇게 불리고 싶으면 당장…!”

“당신께서 붙여주신 이름이잖아요? 제대로 불러주세요. 루네비아라고.”

“루. 루네비아.”

실시간으로 온도가 내려가는 게 느껴지는 어투에 말을 더듬으며 제대로 이름을 불러줬더니 그제서야 루네비아가 웃었다.

이 여자 무서워! 방금 전에 진짜 칼로 찔러버릴 듯한 분위기가 느껴졌단 말야!

이게 어떻게 요정들의 여왕이냐! 멘헤라들의 여왕이겠지!

“어미 노릇도 제대로 못 해줬는데 이토록 어엿하게 성장하다니. 루엘. 당신께는 몇 번이고 감사를 전해도 모자랄 겁니다.”

“아뇨. 주신이시여. 본래부터 올곧은 아이였습니다. 제가 한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저. 크흡.”

“정말 감동적인 모습이에요. 알른 영애께서도 그리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그래. 참 감동적으로 보이긴 하네.

저 이야기의 중심이 나만 아니었으면 같이 눈물을 흘려줬을 거야.

근데 저 이야기의 중심은 나잖아!

오글거려서 죽을 것 같아!

제발 도망치게 해줘!

이거 설마 신종 고문이야?! 기지 위치라도 불어줘야 해!?

뭐든 말할테니까 살려주라! 실시간으로 위장이 녹아내리는 느낌이란 말야아아아!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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