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4
공략을 멈춰야겠단 이야기를 전하자 프레이는 아쉬운 기색을 드러냈고 비시는 말로는 아쉽다 했으나 그 입가에서 웃음을 지우질 못했다.
하긴 네 입장에서 나랑 같이 하는 던전 공략은 멀미참기 게임이나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다음에 던전에 올 땐 좀 더 멀쩡한 사람이랑 같이 와.
던전 바깥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입구를 통제하고 있는 교수들.
그 바깥에서 웅성이고 있는 학생들.
구경을 하는 학생들이 호기심만 드러내는 걸 보면 아직 아서가 행방불명되었다는 게 알려지진 않았나 보네.
하긴 아무리 아서가 계승권과 거리가 멀다하나 왕자.
그 사람에게 변고가 생겼다는 게 알려지면 난장판이 될 테니까.
안 그래도 지난 번 입학시험 때의 사고로 많은 항의를 받았을 소울 아카데미다.
여기서 아서에게 무슨 일이라고 생겼다간 아카데미가 휘청거리게 될 걸.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교수들이 저렇게 다급해 보이는 거고.
나는 혼란의 한 가운데에서 칼을 데리고 던전의 앞에 섰다.
‘칼…’
“허접. 좌표 읽는 법 기억해?”
“물론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단 소문이 퍼진 듯 점차 늘어나고 있는 학생들 탓에 교수들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던전에서 빠져나온 우리가 다시금 던전에 들어가는 것을 신경 쓰지 못했다.
덕분에 우리는 아무런 방해 없이 다시금 던전 안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칼…’
“허접. 전력으로 뛸 거야. 좆밥마냥 뒤처지지마.”
“그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전에 던전을 공략할 땐 프레이와 비시를 배려해 어느 정도 속도를 조절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칼은 여전히 나보다도 막강한 괴물이니까. 전력을 다해서 앞으로 내달린다.
이윽고 우리 앞을 막는 고블린이 나타났지만 난 멈추지 않았다.
고블린이 우리를 인지하는 것보다 칼의 검이 그들의 목을 날리는 게 빨랐으니까.
함정이 나타났을 때도 우린 멈추지 않았다.
저 정도 함정에 상처를 입을 정도로 우린 허약하지 않았으니까.
최단의 거리를.
최속의 속도로.
달리고 또 다시 달린 끝에.
“칼. 그리고 알른 영애?”
“학생이 왜 여기에.”
“칼! 아무리 그대의 아가씨라지만 학생을 여기에 데리고 오면…”
우리가 6층에서 아서가 행방불명된 장소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0분이면 충분했다.
그 곳에서 논의를 나누고 있던 교수들은 우리를 보고서 경악의 목소리를 냈다.
벅차오르는 숨을 가다듬으며 마도구가 사용된 장소로 다가서려 했더니 교수 중 하나가 나를 가로 막았다.
“알른 영애.”
전투학 교수 안톤.
딱딱해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비교적 말이 통하는 사람.
“무엇 때문에 여길 온 겁니까.”
‘교수님. 제게 해결책이 있습니다.’
“무능 교수. 왜 문제가 생긴 건지도 모르는 멍청한 당신에게 선물을 주려고 왔어.”
“그 말은 알른 영애 당신에게 해결책이 있다는 소리입니까?”
교수는 메스가키의 언어를 듣고서도 화를 내지 않고 내게 물음을 던졌다.
‘물론입니다.’
“당연하지. 내가 너처럼 무능한 멍청이인 줄 알아?”
이 문제를 해결할 자신이 없었다면 애초에 여기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거다.
나는 주제도 파악하지 못하는 멍청이가 아니거든.
내가 당당히 소리를 치자 안톤이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교수들도 해결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문제다.
일개 학생에 불과한 내게 해결책이 있단 걸 믿기는 어렵겠지.
그래서 난 내 말을 증명하기 위해 주머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서 안톤에게 보여주었다.
“그건?”
‘마법…’
“마법 재현의 두루마리야.”
한 장소에서 펼쳐졌던 마법을 다시 발동시키는 마도구.
원래는 아카데미 던전 80층의 보스를 공략하기 위해 비싼 돈을 주고서 준비한 물건.
아서가 사용한 나침반에 달려 있는 기능은 결국 특정 좌표로 사람을 이동시키는 공간이동의 마법이다.
마법 재현의 두루마리로 그 마법을 다시 사용한다면 같은 장소로 갈 수 있을 터.
내가 그리 이야기를 하자 안톤이 손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그를 주신다면.”
‘같이 갈 거에요.’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나도 갈 거야.”
지금부터 가게 될 던전은 교수들의 입장에서도 처음으로 공략하는 곳이 될 터.
아무리 저들이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헤매게 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아서 일행을 수색하는 데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렇지만 난 다르다.
소울 아카데미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던전을 꿰고 있는 내게 헤맴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알른 영애. 저 너머는 그 어떤 위험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곳입니다. 교수의 입장에서 당신 같은 학생을 데리고 가는 건…”
‘저에게는…’
“무능 교수. 나에겐 던전의 지리를 알 수 있는 축복이 있어.”
안톤의 말을 끊고서 그리 이야기를 하자 안톤이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평범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무슨 헛소리인가 했겠지.
그렇지만 난 입학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사람이자 그 던전에서 일어난 사고의 생존자.
더욱이 방금 전까지 아카데미의 던전을 최속으로 공략하던 인간.
사실 던전과 관계된 스킬은 아무것도 없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이야기가 다르지.
‘도움이 될 거에요.’
“너 같은 멍청이보단 훨씬 더 도움이 될 걸?”
어깨를 피며 허세를 부리자 안톤의 시선이 칼에게로 향했다.
칼은 그 시선의 뜻을 순식간에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께선 축복을 지니고 계십니다. 기사의 명예를 걸고서 이는 사실입니다.”
안톤은 칼의 말을 듣고서 고민을 하다가 결국 한숨과 함께 목소리를 냈다.
“알겠습니다. 대신 전투에 나서지 마시고 길만을 알려 주십시오.”
애초에 전선에 나설 생각이 없었던 난 알겠다는 답을 했다.
내가 미쳤다고 지금이 몸뚱아리를 가지고 옛 신 콜히티의 신전에서 싸움을 벌이겠어?
이게 게임이었다면 컨트롤로 극복해 보였겠지만 이건 게임이 아냐.
싸움에서 걸어야 하는 건 진짜 내 목숨이라고.
난 낭떠러지 위에서 줄타기를 하고 싶은 생각 따윈 요만큼도 없어.
내가 동의를 함에 따라 안톤이 자리를 비켰고 난 아서가 사라졌던 자리에서 두루마리를 펼쳤다.
그러자 바닥에 마법진이 그려지며 밝은 빛을 냈다.
이윽고 빛이 사그라듬에 따라 바뀐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반쯤 부서져 그 아래의 흙이 모습을 드러낸 돌바닥.
한 때는 화려한 조각이 자리 잡았지만 이젠 넝쿨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금이 간 벽.
잊혀진 신 중 하나인 콜히티를 모시던 신전.
오랜만이네.
예전에는 노가다 용으로 자주 찾던 던전 중 하나인데 말이야.
으음. 여기는 던전 3층의 한 가운데인가.
게임하고 다르네.
“알른 영애. 축복이 발동되나?”
안톤의 물음에 답을 하려다 잠시 멈칫했다.
던전을 공략하기 위한 길이라면 얼마든 이야기해줄 수 있지만 지금 우리의 목표는 그게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디까지나 아서 일행을 찾는 것.
그들을 구출할 수 있다면 던전 따윈 공략해도 좋고 안 해도 상관없다.
생각해보자.
아서 일행은 여기에 떨어진 후에 패닉에 질렸을 거다.
그들이 아무리 대단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아카데미의 신입생일 뿐이니까.
그런 상황에서 아서 일행이 의지할 사람이 누구일까.
뻔하지.
아카데미의 교수.
그들을 지켜줄 수 있는 보호자.
루카.
그 정신나간 분탕충 새끼.
루카가 어떤 인간인지 모르는 아서 일행은 분명 루카에게 어찌하면 좋겠냐고 물었을 것이다.
그럼 루카는 이렇게 대답했겠지.
‘언제 도움이 올지 모른다. 던전을 공략해야 한다. 걱정마라. 자신이 있으니 그 어떤 던전도 손 쉽게 공략할 수 있을 거다.’
물론 루카가 손을 댄다면 그 어떤 던전도 쉽게 공략할 수 있겠지.
그 놈의 인성은 어찌되었든 간에 실력은 진짜니까.
하지만 그 새끼는 던전을 공략할 생각은 요만큼도 없다.
그 놈이 가진 생각은 어디까지나 우연을 가장해 아서 일행에게 시련을 가져다 주는 일이니까.
루카의 성향상 그 새낀 미리 이 던전을 둘러봤을 거야.
시련의 장소로 어디가 적당한 지도 살펴봤을 테고. 분명 그 곳으로 아서 일행을 데리고 가려하겠지.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시련의 장소를 추측하는 일이야.
“알른 영애?”
‘잠시만요. 교수님.’
“무능 교수. 기다려도 못 배운 강아지야? 닥치고 있어 봐.”
지금 이 장소에 좌표를 지정해 둔 의도가 있을 거야.
이 근처에서 시련을 줄만한 장소가 어디에 있지?
미노타우르스 3마리의 협공?
아냐. 그건 돌파가 불가능하잖아.
루카는 아에 넘어설 수 없는 시련은 주지 않아.
적당한 곳.
실력 있는 유저가 발악하듯 컨트롤을 하면 돌파할 수 있을만한 곳.
추측이 되는 곳이 몇 군데 있긴 한데.
젠장. 게임에선 이 때 루카가 개입하는 일이 없으니까 뭐라고 확신할 수가 없네.
이럴 때는 가까운 곳부터 다 뒤져보는 게 정답이겠지.
고개를 들어 지금 파티 구성을 살핀다.
다 던전이나 전투에 관계된 사람이라 그런 가 전위가 과하게 많네.
그렇지만 상관없어.
이 사람들의 스펙은 이 던전을 박살낼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이니까.
‘따라와요!’
“따라와! 설마 신입생을 놓치는 허접들은 아니겠지?”
*
“무능 교수! 전방에 뇌근육 소! 박살내버려!”
안톤은 루시의 지휘에 따라서 미노타우르스의 머리를 자신의 도끼로 찍어버렸다.
질긴 생명력을 지닌 미노타우르스는 살아남기 위해 발악했으나 안톤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선 무의미했다.
“약골 마법 교수! 화염 날리고 허접 넌 후방에서 달려드는 미친 소들 요격해!”
루시는 그를 보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여가며 지휘를 거듭했다.
처음에는 아카데미의 신입생이 내리는 지시에 의문을 가지던 교수들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루시 알른이 내리는 지시는 마치 미래를 보고 오기라도 한 것처럼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아카데미의 교수들은 하나 같이 현역에서 이름을 날렸던 사람들.
옳은 지시가 무엇이고 그른 지시가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 교수들이 판단을 내리기에 루시 알른의 지휘는 단 한 번도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단 한 번이라면 우연이라 부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수도 없이 반복되면 이는 필연.
교수들은 자신들이 지닌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고 여자아이가 내뱉는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루시 알른이 내리는 지시가 지금 이 순간 최선이라 여기고 있는 것이다.
과연. 아카데미의 던전을 경이로운 속도로 공략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인가.
안톤은 이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루시에 대한 감탄을 참을 수가 없었다.
괴물이군. 상상 이상의 괴물이야.
루시 알른을 데리고 오기를 잘했어.
그녀가 없었더라면 분명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지장이 생겼겠지.
그럼 행방불명된 학생들을 찾는 데에도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터이고.
“무능 교수. 늙어서 귀가 먹은 거야?! 멍청하게 서 있지 말고 움직여!”
“알겠습니다!”
저 독설만 아니었다면 불평조차 할 것이 없었을 터인데.
이건 너무 사치스러운 투정인가.
안톤은 그리 생각을 하며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내달렸다.
루카. 부디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잘 보호해 주게. 금방 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