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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6

Chapter: 76

   정신을 차린 나는 다급히 안의 풍경을 살폈다.

   

   여기가 어디지?

   

   일단 콜히티의 신전이 아닌 다른 던전으로 보내진 건 아냐.

   

   같은 던전 내의 다른 장소로 보내졌을 뿐.

   

   침착하자. 여기서 당황해봐야 아무것도 되지 않아.

   

   “허?! 이는 도대체 무엇.”

   

   ‘잠시만요.’

   “불쌍 왕자님. 허접마냥 나불거리지 말고 가만 계세요.”

   

   이런 돌발 상황이 일어났을 때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정해져 있다.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

   

   여기가 몬스터들이 지나다니는 동선의 한 가운데라면 개죽음을 당하게 될 테니까.

   

   옛 신 콜히티의 신전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공략하기 위해선 철저한 준비를 한 30레벨 중반의 파티를 데리고 와야 한다.

   

   미노타우르스나 중무장된 오크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 정도 화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떻지?

   

   나는 레벨 11짜리 성기사일 뿐이고 아서는 나보다도 허약하다.

   

   이런 우리가 몬스터를 만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뻔하지.

   

   너무 뻔해서 상상하기 싫어도 상상이 될 정도로.

   

   벽의 금을 타고 자라난 넝쿨이 거의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여긴 심층이야.

   

   6층? 7층?

   

   벽에 그려진 그림이 선명하네.

   

   그럼 7층이다.

   

   던전 7층의 지도를 떠올리며 주변을 살핀다.

   

   골목의 위치나 주변의 지형지물을 보면.

   

   <여아야!>

   

   할배가 소리를 치는 것은 곧 경고였으니 그 뒷말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여기가 어딘지는 파악했다. 머릿속에 그려진 지도를 기반으로 도주의 경로를 짠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신전의 심층이 미로마냥 어지럽다는 것이다.

   

   본래라면 유저를 궁지로 몰기 위한 술책이지만 내 입장에선 다르다.

   

   이 곳의 지리를 완벽하게 외우고 있는 나에게 미로와 같은 길은 그저 도망을 치기 좋은 수단일 뿐.

   

   영문을 몰라 멍하니 있는 아서를 들쳐 업는다.

   

   “루시 알른?!”

   

   ‘죄송합니다! 이해해주세요!’

   “불쌍왕자님! 비루한 목숨을 부지하고 싶으면 닥치고 있어요!”

   

   “뒤에!”

   

   ‘알아요!’

   “제가 당신처럼 무능한 줄 알아요? 불쌍왕자님?!”

   

   머릿속에 그려진 길을 따라 필사적으로 내달리니 뒤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뒤따른다.

   

   젠장. 어디까지 뛰어야 어그로가 풀리는 거야?!

   

   그렇게 필사적으로 달려 겨우 발소리를 따돌리고 난 후 어깨에 맨 아서를 내려주고서 숨을 돌렸다.

   

   하아. 진짜 죽겠네.

   

   오늘 하루에만 전력질주를 몇 번이나 하는 거야?

   

   평소에 체력훈련을 조금이라도 게을리 했으면 죽었겠네.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고개를 들었더니 애써 침착한 체를 하고 있는 아서가 보였다.

   

   아마 지금 제일 혼란스러운 건 아서일 것이다.

   

   나야 아그라 그 새끼가 개수작을 부렸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아서는 그저 휘말렸을 뿐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괜히 말을 더해서 혼란을 키우고 싶지 않기 때문이겠지.

   

   게임일 적에도 그랬지만 확실히 얘가 유능하긴 하다니까.

   

   ‘물어보고 싶은 거 있으면 물어봐요.’

   “허접한 불쌍 왕자님.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봐요. 제가 아주 친~절히 알려드릴 테니까.”

   

   “…사양하지 않겠네. 루시 알른. 그대는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알고 있나?”

   

   나는 아서에게 의례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가 던전의 다른 층으로 내던져졌다는 것.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에서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는 것.

   

   그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도망을 치거나 안전구획으로 향해야 한다는 것.

   

   “어려운 상황이군.”

   

   난 아서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전에 연금술사가 머무르는 곳에 떨어졌을 때보다 상황이 나빴다.

   

   나오는 몬스터 자체는 그 때보다 약했지만 그 곳에서 나온 녀석은 눈병신이었잖은가.

   

   약점이 너무도 명확해서 따돌리기 좋은 녀석들이었단 말이다.

   

   그렇지만 이 곳은 다르다.

   

   아무리 멀리 도망을 쳐도 끝까지 찾아오려는 오크에 육중한 덩치를 지닌 주제에 쓰잘데기 없이 민첩한 미노타우르스.

   

   도주를 하다가 루트를 한 번 잘못 짜면 그대로 협공을 당해 죽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교수들이 구조하러 올 때까지 버티기 위해선 안전구획으로 가는 게 최선이겠지.

   

   움직여야 한다.

   

   ‘할아버지. 지난번처럼 부탁드릴게요.’

   <고생이 많구나.>

   ‘어쩌겠어요. 찍혔는데.’

   

   이런 개짓거리에서 안전하고 싶다면 무슨 수작을 부리더라도 짓뭉갤 수 있을 만큼 강해지는 수밖에 없겠지.

   

   기다려. 아그라.

   

   아직은 성장하는 중이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네가 수작을 부리는 걸 웃으며 반길 수 있을 만큼 강해져 있을 테니까.

   

   소울 아카데미 고인물의 실력을 보여주마!

   

   머잖아 호구가 될 거니까 그 때까지 즐겨두라고!

   

   “어찌할 것이냐.”

   

   다시 고개를 든 내가 방패를 한 손에 쥐자 아서가 물음을 던졌다.

   

   ‘안전구획으로 갈 거에요.’

   “불쌍왕자님이라도 안전 구획이 뭔진 아시죠? 거기로 갈 거에요.”

   

   “안전구획이 어디에 있는 줄 알고 움직이는가.”

   

   아서는 말했다.

   

   방금 전에 도망을 칠적에 이 곳이 미로처럼 복잡한 것을 보았다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길을 헤매다 적을 만나 죽게 될 것이라고.

   

   그러니 당장은 무작정 전진을 할 것이 아니라 조용한 곳에 머무르다 마물이 기척을 보이면 움직이는 식으로 하자고.

   

   이성적으로 옳은 판단이었다.

   

   이게 던전학 시험이었다면 백점을 줘도 좋겠지.

   

   허나 이건 시험이 아니고, 적어도 내게 저건 좋은 판단이 아니었다.

   

   ‘뭐가 어디에 있는지 다 알아요.’

   “불쌍왕자님. 당신께서 허접하다고 저까지 허접으로 보지 말아주시겠어요? 전 이 던전에서 뭐가 어디에 있는지 다 알고 있거든요?”

   

   “말도 안 된다. 이 곳은 그대도 처음 보는 던전이지 않나.”

   

   아닌데요. 지겹도록 봤어요.

   

   이 던전을 공략한 횟수만 따져도 수천 번은 될 것 같은데.

   

   아니 그보다 더 많으려나.

   

   여기의 보스인 콜히티의 조각이 주는 보상이 좋은 편이었어서 매번 공략하러 왔었으니까.

   

   현실은 이랬지만 이렇게 말을 해봐야 아서가 내 말을 믿어줄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믿음직스럽게 웃어 보이며 목소리를 냈다.

   

   ‘절 믿어주세요.’

   “불쌍왕자님. 허접인 당신의 생각을 믿지 말고 제 생각을 믿어요.”

   

   “…근거가 있나?”

   

   ‘네! 제겐 축복이 있거든요!’

   “전 허접 주신의 사랑을 받거든요.”

   

   내가 그리 이야기를 하자 아서는 눈을 치떴다가 이내 가볍게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한 번 믿어보도록 하지.”

   

   *

   

   신의 사랑을 받는다는 루시 알른의 말에 허언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던 대로 이 던전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꿰고 있었던 것이다.

   

   던전의 길이 어떻게 되는지.

   

   마물이 어디서 나타나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던전 내에 함정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이것은 단순히 던전의 공략법을 아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 던전을 설계해서 만들었다 말해도 믿을 정도로 루시 알른의 판단은 정확했다.

   

   던전의 정보에 관해 알게 되는 축복을 지니고 있다 했지.

   

   하. 이런 것을 지니고 있는 자에게 나는 던전의 공략을 가지고서 승부를 벌이자 했던 것인가?

   

   멍청했군. 멍청했어.

   

   제 발로 패배의 길에 걸어 들어가고 있었음에도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던 꼴이라니.

   

   루시 알른은 승부를 제안하는 나를 보고서 얼마나 가소로웠을까.

   

   하아.

   

   세상을 위에서 내려다 볼만큼의 재능을 지닌 자인가.

   

   “루시 알른.”

   “왜요.”

   

   위험의 한 가운데에 서 있기 때문일까.

   

   루시 알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날이 서 있었다.

   

   “본인을 왜 불쌍왕자라 부르는 지 물어도 되겠나?”

   

   이전에 아서가 조이에게 듣기로 루시 알른은 그의 사정을 알고서 모욕을 한 게 아니라 했다.

   

   다른 이라면 헛소리라 단정지었겠지만 루시 알른은 자신의 오만한 성격 탓에 평생을 고립되어 살아온 자.

   

   주변의 소식에 서투를 수밖에 없다.

   

   이전에 감정에 치중해 있던 아서는 이 사실을 외면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머리가 어느 정도 식어버린 아서는 조이가 해주었던 설명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래서 말을 꺼냈다.

   

   왜 본인의 사정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본인을 불쌍왕자라고 부르는 것이냐고.

   

   물음을 들은 루시 알른은 고갤 돌려 한심하다는 듯 아서를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 불쌍하단 티를 내니까 불쌍왕자죠.”

   “본인이?”

   “그것도 몰랐어요? 풋. 너무 허접이라 설명드리기도 싫네요.”

   

   티를 냈다고? 내가?

   

   그럴 리가.

   

   본인은 평생을 동정 받지 않기 위해서 살았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말씀하셨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돌아가신 어머니가 모욕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른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인간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단 말이다.

   

   그런 본인이 불쌍하단 티를 내고 다녔다니.

   

   “자세히 설명을.”

   “불쌍왕자님. 발정난 개마냥 달려들지말고 가만 있어요.”

   

   모욕적인 언사와는 달리 진중한 어투에 아서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눈앞의 일을 위해 감정을 죽일 줄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루시 알른을 따라 벽 너머로 고개를 내민 아서는 길목을 가로막고 서 있는 마물의 모습을 발견했다.

   

   미노타우르스.

   

   아서는 저 마물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었다.

   

   아서가 왕궁에서 알고 지내던 기사 중 하나는 자기 무용담을 늘어놓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그가 해 준 이야기 중엔 미노타우르스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던 것이다.

   

   ‘미노타우르스는 무척이나 강한 마물입니다. 어지간한 병사를 갑옷 채로 비틀어버릴 힘과 들소처럼 빠른 속력. 거기에 더해 인간의 지혜와 무를 지니고 있죠. 생명력은 얼마나 뛰어난 지 어지간한 상처로는 죽지도 않습니다.’

   ‘왕자님. 기억하십시오. 미노타우르스는 기사조차 위기에 빠트릴 수 있는 마물입니다. 혹시나 마주하게 된다면 도망치셔야 합니다.’

   

   아서는 여전히 그 기사의 이야기를 기억했다.

   

   소울 아카데미의 교수들이야 한 때 현역에서 이름을 떨쳤던 이들이니 저를 손쉽게 상대하지만 자신이나 루시 알른은 아니다.

   

   섣불리 덤벼들었다간 개죽음을 당하리라.

   

   루시 알른이라 하여 이 사실을 모르지 않을 터인데 그녀는 다른 곳으로 향할 기색이 없었다.

   

   그 대신 그녀는 싸움을 준비하듯 주머니에서 물약 몇 개를 꺼내어서는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루시 알른. 설마 저 놈과 싸울 셈인가?”

   “네. 소대가리를 박살내려구요.”

   “자네 미친 겐가?”

   

   그건 자살행위다.

   

   아무리 루시 알른이 또래에 비해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다 한들 저 놈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뭐에요. 불쌍왕자님. 오줌 지릴 것 같아요?”

   “겁이 난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잖나. 이건.”

   “저 소대가리를 박살내야 안전 구획으로 갈 수 있어요.”

   

   안전구획.

   

   아그라가 만들어낸 저주스러운 공간에 아르마디의 권능이 내려 안전을 보장하는 곳.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던전에서 유일하게 공략자들이 안심하고 쉴 수 있는 공간.

   

   이 곳에서 안전히 버티기 위해선 거기에 가야 한다고 루시 알른은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선 저 미노타우르스를 쓰러트려야 한다고.

   

   “불가능하다. 그런 위험을 시도할 바에야 지금처럼 몬스터를 피해 다니면서.”

   “불쌍왕자님. 허접한 당신과 제가 아카데미의 허접들이 찾아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그 대답을 들은 순간 아서는 깨달았다.

   

   루시 알른이 이게 위험한 길이란 걸 알지 못할 리가 없다는 걸.

   

   이 던전에 관해 모든 걸 아는 그녀가 저 마물의 위험성을 모를 리 없단 걸.

   

   “진실로 이게 유일한 방법이더냐?”

   

   루시 알른이 고갤 끄덕인 순간 아서는 자신의 검 손잡이를 꾹 붙잡았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인가.

   

   “뭐 정 무서우면 겁쟁이 불쌍왕자님은 뒤에서 바지를 말리고 있어도 괜찮아요.”

   “아니. 본인도 싸우지.”

   

   여자아이에게 모든 걸 맡기고 도망치는 것은 너무 추하지 않은가.

   

   본인은 이 이상으로 추한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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