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주변 건물들은 모두 불이 꺼져 있는데도 환하게 불을 밝히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창고 건물이 있었다.
창고 앞에는 문을 열고 화물을 기다리는 탑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창고 입구는 종이박스를 나르는 사람들이 계속 들락날락했다.
창고는 척 보기에도 제대로 관리가 되어있지 않았다.
방치와 부패로 얼룩진 창고 벽.
색이 바랜 외부 페인트.
청소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지, 바닥에는 녹슨 금속과 나무 조각들이 굴러다녔다.
하지만 허름한 창고와 달리 창고 내부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다루는 물건들은 깔끔하고 멀쩡해 보였다.
낡고 해진 창고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깔끔한 종이박스에 폴라로이드 사진을 가지런히 담는 남자들.
“빨리빨리 움직여!”
“아직 포장해야 할 사진이 산더미라고!”
포장이 끝난 박스는 빠르게 탑차 안으로 옮겨졌는데, 차량에는 회사명이 쓰여있었다.
<데일리 오브젝트.>
이 창고는 데일리 오브젝트에서 사용하는 창고였다.
포장하는 사진들은 ‘춤추는 펭귄’이 찍힌 폴라로이드 사진.
현재 서울에서 엄청나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인기 상품이었다.
처음에는 오브젝트라서 꺼리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 팔려나갔는데도 별문제가 없어서 결국 대중적으로 퍼지게 된 것이다.
‘데일리 오브젝트’가 자칭 ‘오브젝트 전문 언론사’라는 점도 한몫했다.
‘위험한 오브젝트를 최전선에서 찍는 사람들이니 안전한 것도 잘 알겠지’ 하는 일반 대중의 인식이 판매에 도움을 준 것이다.
불티나게 팔리는 사진을 최대한 팔아 치우기 위해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하루 종일 찍고, 하루 종일 포장하고, 하루 종일 실어 날랐다.
“빨리빨리 움직여! 이런 건 한탕 장사라고! 인기를 끌 때 확 팔아버려야 해!”
버려진 것 같은 허름한 창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리고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종이박스.
어느 하나 맞물리는 것이 하나 없는 이상한 공간이었지만, 가장 이상한 것은 따로 있었다.
검은 펭귄.
폴라로이드 사진기 앞에서 24시간 얌전히 앉아 있는 검은 펭귄이 가장 이질적인 존재였다.
까악.
까아악.
언제나 얌전히 있던 검은 펭귄이 울기 시작했다.
“누가 저거 좀 닥치게 해봐! 시끄럽잖아!”
“사장님, 어… 어떻게 닥치게 하죠?”
멍청한 표정의 남자가 검은 펭귄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남자에게 말했다.
“그냥 한대 후려쳐!”
“이거, 뭔가 이상해요. 펭귄이 막 사람을 비웃는 것 같아요. 위험한 거 아니에요?”
박스를 포장하던 남자는 성큼성큼 다가와서는 펭귄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남자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으이구, 병신아. 지금 사진 찍는 거 딜레이 되는 거 안 보여? 그냥 이렇게 펭귄 머리통을 후려치란 말이야!”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펭귄 머리를 내리쳤다.
퍽. 퍽.
감정을 실어서 강하게 내려치는 소리가 들렸다.
펭귄은 무슨 짓을 해도 가만히 있었기에, 남자의 손놀림에는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으드득.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악! 내 손! 내 손이!”
남자의 손은 펭귄의 부리 모양으로 깔끔하게 잘려 나가 있었다.
피부, 근육은 물론 뼈까지 절삭기에 잘린 것처럼 깔끔하게.
“이 새끼들아! 무슨 멀뚱히 보고만 있어! 구급차! 구급차를 부르란 말이야!”
까악. 까악.
직원들이 서둘러서 구급차를 부르는 사이, 피투성이의 펭귄이 고개를 들고 즐겁다는 듯이 웃기 시작했다.
까악. 까악. 까악.
그리고 그 펭귄 울음소리는 점점 커지고 많아지기 시작했다.
바닥에 엉망으로 흩어진 사진들에서 펭귄 머리가 잔뜩 튀어나와서 소리치고 있었다.
“미친, 미쳤어. 오브젝트로 장사하자는 소리는 누가 한 거야?”
사진을 포장하던 남자 중 한 명이 죄다 내팽개치고 창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곤 창고 밖에서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아악!”
도망갔던 남자의 비명 소리와 뭔가를 뜯어먹는 으드득거리는 소리.
울부짖는 사장을 버려두고 따라서 도망가려던 남자들은 그 소리에 우뚝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창고 입구에서 피로 물든 펭귄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어느새 남자들 주변은 펭귄들로 가득 찼고, 남자는 점점 다가오는 펭귄들에 겁을 먹었다.
그리곤 펭귄들이 일제히 달려들어서 남자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
따뜻한 격리실에 누워서 아이스크림을 떠먹는다.
하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TV를 보니, 검은 펭귄의 습격에 대한 이야기로 한가득이었다.
‘데일리 오브젝트’에서 사진을 어찌나 많이 팔았는지, 피해자 숫자가 엄청났다.
천벌을 받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책임질 사람이 없어져 버렸다고 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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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사진을 도매, 소매로 공급하던 ‘데일리 오브젝트’는 사장을 포함해서 모든 직원이 사망했다.
그들의 죽음은 굉장히 빨리 알려졌는데, 어떤 허름한 창고로 출동한 구급차에 의해서 발견된 것이다.
다행히 펭귄들은 순식간에 처리되었다.
강철처럼 단단하지만, 물리 면역은 아니니까 철갑탄 같은 걸로 빵빵 쏘면 죽겠지.
다만 일부 펭귄 잔당들이 강서구 쪽으로 도망쳤다던데, 괜찮으려나?
이번 사건으로 정치인들은 오브젝트 관련 법안에 손을 댈 생각으로 보였다.
오브젝트를 다룰 수 있는 권한에 대한 자격증의 기준을 좀 더 높게 책정한다던데….
적어도 ‘데일리 오브젝트’ 같은 녀석들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기준을 높였으면 좋겠다.
아니지, 그렇게 높여버리면 세희 연구소가 탈락해 버리려나?
흠, 그러면 세희 연구소가 아슬아슬하게 통과할 정도로 기준이 올라가면 좋겠다.
히히.
침대에 누워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실없는 생각을 했다.
***
까치산 콘퍼런스는 예상보다 그 규모가 커 보였다.
까치산 연구소는 공간이 협소해 보였는데,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겉보기보다 훨씬 커 보였다.
높은 천장에는 화려한 샹들리에가 장식되어 있었고, 새하얀 조명이 홀 전체를 은은한 빛으로 물들였다.
깔끔하게 일렬로 놓인 의자는 그 끝이 쉽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뻗어 나와 있어서 이 장소가 얼마나 많은 참석자를 수용할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작은 규모의 세희 연구소 출신으로 참석해서, 위축될 법도 했지만 내 손바닥을 간질이는 황금 사신이 덕분에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가방에 넣어둔 황금 사신이는 아니나 다를까, 자꾸 나오려고 꿈틀거려서 손안에 담아두고 그 손을 책으로 가리고 다니고 있었다.
황금 사신이는 이런 상황도 즐거운지, 손바닥 안에서 꿈틀거리고 움직이며 활짝 웃고 있었다.
수많은 연구소와 정부 관련 단체에서 참가한 가운데, 눈에 확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트리니티 연구소’ 소속의 연구원들이었다.
현재 명실상부한 한국 넘버 1의 연구소 소속의 연구원들이었다.
트리니티 연구소는 대형 연구소 3개가 연합하여 만들어진 연구소인데, 막대한 규모와 자금력으로 업계 영향력을 넓혀가는 중이었다.
그들은 트리니티 랩 로고가 새겨진 실험실 가운을 자랑하듯이 꺼내입고 거들먹거리고 있었다.
국내 최고의 인재들이 모이는 곳인 데다가, 그 임금 수준도 최고 수준이니 자부심을 가지는 건 이해해도 저런 식으로 티를 내면서 거들먹거리는 건 이해하기 힘들었다.
제일 이상한 건, 황금 사신이의 반응이었다.
주변에 뭐가 있든지 내 손바닥 안에서 놀던 황금 사신이지만, 트리니티 연구원 근처로만 가면 놀기를 멈추는 것이다.
트리니티 연구원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면서 이를 드러내고 위협하기까지 했다.
황금 사신이도 자랑질하고 거들먹거리는 건 별로 안 좋아하나 보다.
사신이에게 미움 안 받으려면 나도 조심해야겠네.
***
격리실 내부의 가구들을 치워두고 황금 사신을 멀찍이 배치해 두었다.
이번에 새로 얻은 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해서였다.
자, 그럼 간다!
황금 사신에게 집중하니, 황금 사신에게로 이어진 연결이 느껴졌다.
그러면 그 연결을 향해서 다이빙!
눈 깜짝할 사이에, 황금 사신 근처에 내가 서 있었다.
황금 사신은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며 신기하다는 듯이 짝짝 박수를 쳤다.
해로운 새, 검은 펭귄을 죽이고 얻은 능력은 황금 사신 근처로 순간 이동하는 능력이었다.
장작 소비가 좀 크긴 하지만 허접한 새를 좀 죽이고 얻은 능력치고는 엄청 좋은 능력이었다.
해로운 새가 사진을 매개로 이동한다면, 나는 황금 사신을 매개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멀어서 가기 귀찮은 곳은 황금 사신을 보내면 되는 건가?
하지만 능력 테스트를 위해 자꾸 자신에게 달라붙는 황금 사신을 떼어내서 멀리 배치해 두는 것도 힘들었는데, 황금 사신을 미리 보내는 건 힘들어 보였다.
아마 황금 사신을 내 마음대로 통솔하는 능력을 얻은 뒤에야 그런 짓이 가능해지겠지….
***
늦은 저녁, 콘퍼런스가 끝나고 한산해진 회장에서 검은 요원은 붉은 달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결국, 콘퍼런스 날까지 대피 명령은 떨어지지 않는군.’
별다른 위험이 없어 보이는 현상은 무시하는 세태가 문제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일일이 무서워하기에는 오브젝트가 너무 많이 나타나고 있었다.
오브젝트가 흔한 시대인지라 구름 고기가 갑자기 민가에 내려오기도 하고,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오는 미러볼이 국회 의사당을 점거하기도 했다.
결국 아무런 피해도 없이 끝난 해프닝들.
이런 사건들이 쌓여서 안전 불감증을 만들고 있다.
검은 요원 옆에 앉아서 다리를 흔들며 붉은색 박쥐를 만지작거리는 소녀도 그러했다.
도심에 갑자기 나타난 박쥐, 게다가 피처럼 붉은색의 박쥐.
오브젝트임이 분명하지만, 소녀의 반응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워했다.
“박쥐가 있어요! 저기 위에 달이랑 똑같은 색!”
검은 요원은 이번에도 미러볼처럼 아무 일도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