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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8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애매한 시간대, 거구의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서 서울 외곽에 위치한 거대한 저택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남자가 방문한 저택은 분명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는데도,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것처럼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정수리 위에 짧고 뭉툭한 원뿔형 황금뿔이 돋아있는 거구의 남자는 사람을 납치해서 팔아먹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남자였다.

당당한 걸음걸이와 달리 남자의 마음속은 굉장히 복잡했다.

보통 의뢰는 이 저택의 집사가 자신에게 연락해서 착수하게 되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번에는 의뢰하기 전에 얼굴을 봐야겠다며, 이례적인 요청을 해 온 것이다.

보통 이런 수상쩍은 요청은 무시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이제까지 수많은 의뢰를 해 온 큰 손이기에, 그리고 트리니티 연구소장이라는 믿음직스러운 명함에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저택까지 방문하게 되었다.

쾅쾅, 저택 입구에서 문을 두들기자 기다렸다는 듯이 집사가 나와서 남자를 반겨주었다.

“주인님이 기다리십니다. 따라오시죠.”

언제나 전화 너머로 듣던 그 목소리였다.

집사는 삐쩍 마른 노인네였는데, 절로 긴장하게 만드는 이상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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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구의 남자는 집사의 뒤를 따라 저택 정문을 지나쳐서 걸어 나갔다.

정문을 지나친 그를 반겨준 것은 검은 정원.

정원에는 검은색 흙이 잔뜩 깔려있었고, 처음 보는 검은색 식물들이 잔뜩 돋아나 있었다.

그리고 석유 냄새가 났다.

정말 기분 나쁜 정원이었지만, 기이한 분위기를 풍기는 집사의 앞이라서 거구의 사내는 내색을 하지 못했다.

다행히 저택 내부로 들어서자, 석유 냄새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저택 내부는 기분 나쁜 정원과의 현격한 대비 덕분인지 한층 화려하게 보였다.

중앙에는 거대한 트리니티 연구소 로고, 그리고 창문에는 복잡한 스테인드글라스 모자이크가 잔뜩 그려져 있었다.

벽에는 화려한 태피스트리가 걸려 있었고, 천장에 장식된 샹들리에에서는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로비를 지나서 도착한 곳은 커다란 응접실.

그곳에서 깔끔한 정장을 입은 남자가 일어서서 거구의 남자를 반겨줬다.

중년의 나이로 보이는 이 남자가 저택의 주인이었다.

“아, 왔군. 최근 나를 위해서 큰 노력을 해왔다고 들어서 말이야. 꼭 한번 보고 싶어서 이렇게 불렀네.”

의자에서 일어선 중년의 남자는 응접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응접실 벽에는 온갖 형태의 황금 뿔들이 사슴 머리 박제처럼 벽에 주르륵 장식되어 있었다.

하나같이 크고 화려한 모양을 자랑하고 있었다.

모두, 거구의 남자가 납품한 황금뿔이었다.

“언제나 훌륭한 뿔을 납품해 줘서 고맙네. 역시 황금 뿔은 크기가 크고 복잡한 형상을 띌수록 보는 맛이 있단 말이지.”

“아, 예….”

거구의 남자는 이 방에 들어온 직후부터 불안을 느꼈다.

뭔가 명확하게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느껴지는 느낌이 그랬다.

그래서, 빨리 대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자네도 뭔가가 느껴지지 않나? 나는 이 방에 들어오면 편안함을 느낀다네. 황금뿔에 대한 연구가 금지되어 있어서 데이터는 없지만, 분명 그런 효능이 있을 거야.”

거구의 남자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런, 너무 혼자만 떠들었군. 자네를 부른 건 궁금해서 부른 거야.”

중년의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서 거구의 남자에게 둥근 보석 같은 것을 건넸다.

살구색과 검은색이 어지럽게 뒤얽힌 구체는 진주와 흑진주를 섞어 놓은 것처럼 생겼다.

“어… 이게 뭡니까?”

“우리 연구소에서 새로 개발한 영양제네. 한번 먹어보게.”

“그게, 꼭 지금 먹어야 합니까?”

“당연하지! 그게 나름 연구소에서 극비로 취급되는 약품이네. 자자, 어서!”

이 시점에서 거구의 사내는 이런 초대에 응해서 저택에 온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돈이 뭐라고 이런 수상한 곳까지 와서 수상한 약품을 먹으라고 강요받다니.

당연히 거구의 남자는 이런 수상한 약을 입에 넣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중년 남자의 분위기를 볼 때, 먹지 않는다고 하면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남자가 선택한 것은 먹는 척하면서 품 안에 약을 숨기는 것이었다.

“먹었습니다.”

대답을 들은 중년의 남자는 그저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하실 말씀이 더 없으시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등을 돌린 남자의 등 뒤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하군.”

남자는 애써 그 말을 무시하며 성큼성큼 걸어서 들어왔던 길을 돌아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응접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집사가 남자의 앞을 막아 세웠다.

“약을 드셔야지요. 손님.”

남자는 집사가 붙든 손을 떨쳐내려고 했지만,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었다.

집사의 얼굴은 기묘할 정도로 새하얗고 핏줄이 잔뜩 불거져 있었는데, 그 핏줄 색은 검은색이었다.

으드득.

“으아아악!”

집사의 앙상한 팔이 남자의 팔뼈를 손쉽게 으스러트렸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남자를 그대로 제압한 집사는 그의 품속에서 약을 찾아냈다.

“그래, 이상했어. 아무리 적합성이 좋아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건 말이 안 되지.”

집사에게서 약을 받아 든 중년 남자는 다시 그 약을 거구의 남자의 입 속에 넣으며 말했다.

“그럼, 한숨 푹 자라고.”

까맣게 꺼져가는 시야 한 편에서 자신을 제압한 집사가 녹아내리며 검은 진흙이 되어버리는 것이 보였다.

***

까치산 콘퍼런스는 꽤 구성이 잘되어 있었다.

참여하는 연구소 면면도 한국에서 꽤 유명한 곳들이었고, 정부도 준비를 철저히 해서 행사는 매끄럽게 흘러갔다.

“그래그래, 너무 화내지 마. 괜찮아.”

하지만 도저히 발표에 집중할 수 없었다.

황금 사신이 극도로 흥분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왠지 슬퍼 보이기도 했고, 화내는 것 같기도 했다.

찡그린 표정을 펴주려고 마구 쓰다듬어도 별로 효과가 없었다.

사탕을 잔뜩 안겨줘도 소용없었다.

다행인 점은 내 손 밖으로 탈출하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점일까.

오히려 내 목덜미나 머리에 달라붙으려고 하던데, 원인을 알 수가 없네.

황금 사신의 이상 현상의 원인은 꽤 명확했다.

트리니티 소속 연구원들.

그들이 자주 꺼내먹는 정체불명의 간식이 있는데, 그게 원인 같았다.

처음에는 그걸 먹고 싶어서 칭얼거리는 줄 알았는데….

트리니티 연구원에게 가서 하나 얻어오자, 황금 사신이 한 짓이 가관이었다.

뚜시뚜시, 하면서 펀치를 날려서 간식을 없애버린 것이다.

그리고 엄청 우울한 표정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살구색의 조그마한 큐브 모양의 간식이던데, 생긴 건 조그마한 치즈처럼 생겼다.

냄새는 굉장히 향기롭던데,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걸까?

그래서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연구원에게 그게 뭐냐고 물어보았다.

“아~ 이거요?”

트리니티 소속 연구원은 내 옷차림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비웃음을 머금은 채로 말을 이어갔다.

“트리니티에서 시험적으로 만들고 있는 합성 식품입니다. 요즘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구소들은 다들 하는 연구입니다. 오브젝트 식품. 설마 아직도 이걸 모르는 연구소가 있을 줄이야.”

남자는 그대로 뒤로 돌아서 훌쩍 떠나버렸다.

떠나는 남자의 입에서는 세희 연구소에 대한 비하가 조그맣게 계속 이어졌다.

‘정부 보조금만 노리는 도둑들.’

‘오브젝트 격리에 급급하고 이용할 줄 모르는 병신들.’

대충 이런 이야기였다.

화가 날 법한 이야기였지만, 오히려 그 남자에게 돌진하려는 황금 사신을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진심으로 구멍을 내려는 것 같아서, 달래느라 너무 힘들었다.

결국 황금 사신이는 저 간식이 싫다는 거네.

뭐, 오브젝트로 만든 수상쩍은 간식인데 나도 별로 먹고 싶진 않았다.

오독. 오독.

자신이 화났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처럼 사탕을 깨물어 먹는 사신이의 소리를 들으면서 발표를 들었다.

오독.

계속 들려오던 사탕 먹는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벌써 다 먹은 건가?

황금 사신을 내려다보니, 사탕은 반이 넘게 남아 있었다.

황금 사신은 사탕을 먹다가 어딘가를 빤히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딘가를 주시하던 사신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갑자기 사라졌다!

회색 사신처럼 유령화한 건가?

황금 사신이 사라진 것과 동시에 유리가 깨지는 것 같은 맑은소리가 발표장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뜨거운 열풍이 불어닥쳤다.

종이들이 흩날리는 것은 물론 의자까지 들썩일 정도의 강풍.

허공은 마치 유리가 깨진 것처럼 사방으로 갈라져 있었고, 그 균열에서는 붉은 모래가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공간이 어안 렌즈로 본 것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황당한 사태에 다들 당황한 채 목소리를 높였지만, 바람 소리에 모두 묻혀버렸다.

그리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주먹만 한 돌멩이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 치명적인 돌멩이들은 사람을 간단하게 뚫어버렸는데, 그런 돌멩이가 내 눈앞으로도 쏘아졌다.

아, 이런.

***

안락한 분위기의 세희 연구소의 회색 사신 격리실.

그 안에서 회색 사신은 낮잠을 만끽하고 있었다.

잠이 든 회색 사신 주변에서 뿅뿅, 하면서 황금 사신들이 잔뜩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색 사신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볼에다가 뚜시뚜시.

눈꺼풀 위에 때찌때찌.

배 위에서 폴짝폴짝.

이런 구타 행위는 황금 사신 정원에서도 이뤄지고 있었다.

정원에서도 잠든 회색 사신을 황금 사신들이 구타하고 있었다.

왠지 다급해 보이는 황금 사신이들이었다.

마치 빨리 일어나! 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

검은 요원은 발표장 뒤편에 서서, 이변을 목격했다.

모두 당황하고 있을 때, 검은 요원은 금발의 소녀를 둘러업고 균열로부터 달아나기 시작했다.

열풍이 불자마자 달리기 시작했으니, 굉장히 빠른 대처였다.

“아저씨. 무슨 일이죠?”

“오브젝트 관련 사태 같습니다. 우선 빨리 자리부터 피하죠. 적어도 까치산은 벗어나야 합니다.”

검은 요원은 이를 악물고 계속 달렸지만, 역부족이었다.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큰 충격파가 덮쳐와서 검은 요원은 자리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그리고 끝없이 몰아치는 열풍과 모래.

요원은 금발 소녀를 품 안에 숨기고 계속 견뎠다.

그리고 열풍이 잦아들자, 모래를 헤치고 일어선 검은 요원 눈앞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지평선이 보이는 사막.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붉은 사막.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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