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0
조이와 스토페의 가게에 가기로 약속한 날.
여느 때와 같은 모습으로 바깥에 나온 나는 조이를 본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힘을 준 거 아냐?
별다른 장식이 없는 검은 색의 단정한 드레스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우아함이 절로 드러나는 고급스러운 옷.
평소에는 건드리지도 않던 하이힐에 손에는 장갑.
머리에는 나비 장식이 달린 핀까지.
당장 사교계에 나가더라도 조이님! 멋져요! 같은 소리를 들을 것 같은 모습이잖아.
겨우 디저트 가게에 가는 건데 왜 이렇게 공을 들인 거야?!
이러면 평소 하던 대로 교복만 입고 온 나는 뭐가 되는데!
“안녕하세요. 알른 영애.”
‘저기. 조이. 좀 과하지 않나요?’
“얼빵 영애. 나 말고 다른 사람이랑 데이트 하러 가? 뭐 이리 화려한 거야.”
“그 스토페의 가게잖아요.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갈 순 없죠.”
농담조차 통하지 않을 듯한 진지함을 느낀 난 그녀가 복장을 바꾸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오히려 전 알른 영애 쪽이 신기한데요. 예전에 화려한 거 좋아하지 않으셨나요?”
조이가 이야기하는 예전이라는 건 아마 내가 빙의하기 전의 이야기겠지.
그 때의 루시는 화려한 걸 좋아했을 거다.
자기 방을 프릴로 이루어진 지옥으로 만든데다가 옷도 어린이용 마법소녀 만화에 나올 법한 옷만 입고 다녔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결코 그런 옷을 입고 싶지 않다.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사교계를 돌아다닐래 아니면 미노타우르스를 한 번 더 상대할래라고 물어보면 바로 후자를 고를 거야.
설령 죽음의 위협을 겪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취향이 바뀌었어요.’
“미안. 난 얼빵 영애처럼 호들갑이 심한 허접이 아니라서.”
“아. 그러시군요?”
날이 선 어투에 조이가 약간 짜증을 드러냈지만 바깥으로 표출을 하진 않았다.
오늘은 내가 스토페에 데려가 주는 거니까 참아 주는 걸까?
‘가죠.’
“가자. 얼빵 영애.”
스토페의 디저트 가게는 소울 아카데미의 거리에 존재하는 수많은 가게 중 하나다.
소울 아카데미 커뮤니티를 하는 유저들은 흔히들 미약 케이크를 파는 가게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게임 속 NPC와 같이 동행을 할 수 있는 순간부터는 자유시간에 이 가게에 들려 함께 케이크를 먹는 게 가장 빨리 호감도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이었거든.
대체 케이크에 뭐가 들어가 있기에 저것만 먹으면 호감도가 오르는 거야?! 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밈은 여러 이상한 방향으로 해석되고 왜곡되어서 종국에는 스토페의 디저트 가게를 음흉한 음지의 가게로 만들어버렸었지.
뭐어. 그거야 눈동자나 다른 괴문서에서 나올법한 이야기고 지난번에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을 치기 위해 방문했을 적엔 멀쩡한 디저트 가게일 뿐이더라.
거기서 나오는 케이크나 음료 같은 걸 먹어봤지만 평범하게 맛있을 뿐 아무런 영향도 없었고.
스토페의 가게 안에 들어오니 점원이 뛰듯이 와서는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한 쪽은 공작 영애고 다른 한 쪽은 백작 영애이니 극진한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한가.
“어서 오십시오! 파트란 영애님. 알른 영애님. 우선 자리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서 정중히 이야기를 하는 점원에게 스토페의 스페셜 티켓을 꺼내어서 보여주었더니 단번에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는 여전히 입가에 웃음을 새기고 있었지만 눈이 달랐다.
귀금속을 감정하는 사람처럼 유심히 티켓 여러 곳을 살펴보던 그는 이윽고 조심스럽게 티켓을 품 안에 집어넣고는 목소리를 냈다.
“위로 모시겠습니다.”
스토페의 가게에 있는 개인실로 우리를 안내해 준 점원은 잠시 기다려달라는 말과 함께 자리를 비웠다.
“세상에. 제가 스토페의 개인실을 쓸 날이 오다니.”
‘조이…’
“얼빵 영애. 왜 이리 호들갑이야?”
“호들갑 떨 만 하죠! 스토페의 개인실은 진짜 귀한 손님이 아니라면 들릴 수 없는 장소라고요!”
얼마나 들떠있는 건지 지금의 조이는 악역영애의 가면을 약간이나마 벗어던진 상태였다.
잔뜩 입꼬리를 올린 채 안을 살피는 걸 보고 있자니 그냥 좀 사납게 생긴 여고생처럼 보이네.
저기서 입꼬리가 약간만 내려가면 트집 잡을 것을 찾고 있는 악역영애처럼 보일 테지만.
그렇게 조이와 잡담을 나누고 있으려니 문이 열리고 새하얀 제빵복을 입은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카락과 얼굴에 자글거리는 주름은 그의 나이가 적지 않음을 증명했지만 그의 강건한 몸은 달랐다.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군살 하나 없이 각잡힌 그 몸은 그가 평소에 얼마나 관리를 잘 하고 있는 지를 알려주는 듯 했다.
“안녕하십니까. 파트란 영애님. 알른 영애님. 저는 이 가게의 주인이자 과분하게도 디저트 장인이라 불리고 있는 스토페라고 합니다. 이 곳에 계시는 동안 잊지 못할 경험을 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문이 열리며 종업원들이 안으로 들어오더니 우리의 앞에 식기와 그릇을 놓아주었다.
솔직히 말을 해서 나는 디저트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싫어하지는 않지만 내가 아는 디저트라는 것들은 혀가 쓰릴 정도로 단 녀석들이 대부분이었던지라 한 두 개 정도 먹으면 물리기 마련이었지.
그래서 난 디저트 코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걱정이 많았다.
그걸 다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싶어서.
허나 이건 정말로 쓰잘데기 없는 걱정이었다.
스토페가 내놓은 디저트들이 그런 싸구려였다면 어떻게 스토페가 대륙 제일의 장인이라 불릴 수 있었겠는가.
가벼운 신맛을 통해 입맛을 돋우는 에피타이져를 내놓고.
차가운 것을 먼저 내놓음으로써 혀의 감각을 살린 후에.
그 다음에 따뜻한 것이 나오면서 혀와 함께 몸을 녹여버린다.
치밀하게 빌드업을 준비해 놓고서 마지막에 터트려 버리는 코스는 감탄스럽다 못해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내가 여태까지 먹었던 건 그저 디저트의 흉내를 내고 있는 가짜였어.
그런 것들만 먹고 있었으니 디저트에 대한 편견이 생겼던 거야.
세상에 모든 디저트가 이랬더라면 내 이빨은 모두 다 검은 색으로 변하지 않았을까.
평소 디저트를 그냥저냥이라 생각하던 내가 이런데 원래부터 디저트를 사랑하던 조이는 어떻겠는가.
스토페의 디저트라는 환상 속에 들어가버린 그녀는 꼭 최면에 걸린 것만 같았다.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숟가락을 움직이는 기계가 되어버린 조이는 내가 내는 목소리를 듣지 못할 지경이었다.
저 정도로 기뻐하는 걸 보니까 여기에 데려온 보람이 있네.
하긴 저 정도나 되니까 즉각적으로 조이의 호감도를 올릴 수 있는 거겠지.
그러고 보면 지금 조이의 호감도는 어느 정도이려나?
일단 시작이 40이하인 건 확실하고.
지난번에 목숨을 구해준 일에 더해 이번 일까지 합치면 대충 60은 넘지 않을까?
아니다.
얼빵 영애라고 부른 일이라거나 불쌍 왕자 사건 같은 걸 생각해보면 그것보다 낮겠네.
뭐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호감도 70에 제일 가까운 사람이 조이라는 건 분명하다.
이번에 함께 던전을 공략하기로 했으니 그를 핑계로 같이 시간을 보내다보면 기말고사 전엔 충분히 호감도 70을 찍을 수 있겠지.
이걸로 무능 주신이 준 퀘스트를 클리어 하기 위한 사람 한 명을 확보한 건가.
다른 하나야 알새틴이 목걸이를 구해 온 후에 열등 공자를 공략하면 되니까 이걸로 퀘스트 클리어는 안정권이라 봐도 무방하겠네.
하하. 봤냐! 허접 무능 주신?!
네가 백날천날 억까를 해봐야 나는 여유롭게 퀘스트를 클리어 할 수 있다고!
나를 괴롭히고 싶다면 더…
아니.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르마디님.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이번 일도 다 아르마디께서 보우하셨기에 일어난 일이지요.
전 언제나 감사함을 잊지 않고 있답니다.
이상하다.
스토페의 디저트에 알코올이 들어 있었나?
왜 생각에도 없던 말이 나오는 걸까?
어쨌든 이제 우리 고귀하시고 존귀하신 아르마디님께서 내려주신 퀘스트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다른 일을 준비해야겠네.
슬슬 소울 아카데미의 메인 스토리가 진행될 시점이니까.
이번에는 누가 악신의 사도가 되려나.
*
스토페의 디저트를 먹은 후로 이틀이 흘렀음에도 조이는 그 순간을 잊지 못했다.
다른 나라의 왕족이라도 오는 게 아니라면 초대받을 수 없다던 스토페의 개인실에 들어간 일.
그리고 그 곳에서 어지간하면 외부에 나오지 않는 스토페님을 만난 일.
그 분께서 인사를 건네주심과 동시에 나온 수많은 환상적인 디저트들.
숟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입 안을 가득 채우던 행복.
그 날의 경험은 조이가 살아온 십수년의 세월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행복한 경험이었다.
그렇지만 그 날의 기억이 행복했던 만큼 조이가 어깨에 진 부채도 커다랬다.
아카데미의 던전이 다시 문을 여는 날에 함께 들어가자는 약속은 하루가 지날 때마다 조이를 조여왔다.
또 다시 사고가 나지 않을까?
교수님들이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오류가 생기지 않을까?
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무언가 요행이 생겨 날이 미뤄지기를 기대했던 조이지만 안타깝게도 아카데미의 교수들은 유능했다.
그렇게 예정대로 아카데미의 던전이 열리게 된 오늘.
조이는 학교에 입학했을 때 아버님에게 선물 받았던 스태프를 두 손으로 들고서 아카데미 던전의 입구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아. 나는 왜 물욕에 져서 그런 대책 없는 약속을 해버리고만 걸까.
그냥 지금이라도 못 하겠다고 말씀을 드릴까?
다른 식으로 도움을 드리겠다고?
그렇지만 내가 스토페의 스페셜 티켓에 걸맞는 보상을 드리는 게 가능한가?
“얼빵 영애.”
머리가 복잡해져감에 따라 걷는 속도가 느려질 무렵 조이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갤 돌렸다.
거기엔 루시 알른이 있었다.
철로 된 갑옷을 입고 있는 그녀는 입학시험을 치러 왔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손에 든 메이스나 방패도.
머리 모양도.
자신만만하고 얄미운 모습도.
“뭐야. 눈이 너구리 같네. 던전에 들어가는 게 무서워서 밤을 샜어? 겁쟁이 영애?”
조이는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좀 잠자리를 설쳐서요.”
“그래? 뭐 괜찮아. 얼빵 영애가 아무리 허접해도 내가 있으니까 말야.”
당당히 말하며 앞서 걸어나가는 루시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조이는 뒤늦게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카데미 던전이 있는 곳에 도착하게 된 조이는 던전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마주했다.
그 순간 그녀는 떠올렸다.
자신을 바라보던 수 천 개의 눈동자를.
길을 가로 막고 있던 마녀의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저 멀리서 들려오던 음울한 목소리를.
그것을 마주한 순간에 보았던 끝없는 심연을.
“얼빵 영애.”
루시의 목소리가 들리고서야 다시금 현실로 돌아온 조이는 자신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음을 깨달았다.
아.
이건.
그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