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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1

황금 사신이가 잔뜩 모여서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황금 사신이들이 팔다리를 붙잡고 늘어서서 만든 귀여운 피라미드였다.

속이 텅텅 비어있으니까, 피라미드보다는 움막에 가까운 걸까?

여전히 죽을 것처럼 더운 사막이었지만, 사신이가 황금 사신이로 그늘을 만들어 주자 꽤 버틸 만해졌다.

더위의 원인은 전적으로 저 하늘 위에서 빛나는 붉은 달이었으니까.

마치 겨울철에 쓰이는 전열기처럼 그리 밝지는 않지만 강렬한 열기를 쏘아 보냈다.

아, 더워. 죽을 것 같아.

물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사막 어디를 둘러봐도 물이 나올 구석은 보이지 않았다.

무심한 표정의 회색 사신은 내 옆에 누워서 팔다리를 휘적휘적하고 있었다.

마치 눈밭에 누운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물론 눈밭이 아니라 화상을 입을 만큼 뜨거운 모래라는 게 차이점이긴 했다.

“사신아.”

알아듣지 못한다는 걸 알아도, 굳이 사신에게 말을 걸었다.

바닥에 누워서 휘적거리던 회색 사신은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와줘서 고마워. 죽는 줄 알았어.”

“여기, 엄청 넓은 것 같지? 360도 어디를 봐도 전부 지평선이라니 서울에서 이런걸 볼 수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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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젝트 관련 사고를 이번에 처음 겪은 건데, 정말 힘들어. 다시는 출장 가기 싫을 정도로. 매번 오브젝트를 찾으러 나가서 사고당하는 이세희 연구소장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걸까?”

회색 사신을 앞에 두고 계속 독백을 이어 나갔다.

노랗게 빛나는 회색 사신의 두 눈에는 지성이 깃들어 있어서 왠지 내 말을 이해하는 것만 같았다.

이래서 오예린 연구원이 회색 사신에 빠져드는 걸까?

회색 사신은 갑자기 하늘을 쳐다보더니, 황금 사신을 또 잔뜩 소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와 눈을 맞추더니, 나타났을 때처럼 훌쩍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나는 주변에 잔뜩 나타난 황금 사신을 품에 끌어안았다.

이상하게 불안하지는 않네.

회색 사신이 불안해하지 말라고 눈빛으로 말한 것 같아.

나도 오예린 연구원처럼 회색 사신에게 빠져들 것만 같았다.

***

TV 소리로 시끄러운 와중에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불안을 조그마한 소리로 내뱉었다.

“괜찮을까?”

황금 사신이는 그런 나를 위로한다고 어깨 위로 올라와서 볼을 토닥토닥했다.

사신이가 좀처럼 돌아오지 않네.

이미 서아를 구하러 갔다면 좋을 텐데.

TV에서 나오는 강서구 주변은 난장판이었다.

유례없이 신속한 행동을 취하는 협회.

여기가 내가 살던 한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적극적인 행보였다.

강서구 주변에서는 장벽을 뚫어내기 위한 온갖 폭탄이 터지고 있었다.

미국, 일본, 중국 등의 나라에 지원 요청도 벌써 이뤄졌는데.

타국에 협조 요청을 꺼리는 자존심이 강한 협회로서는 이례적이었다.

[지금 속보가 들어왔습니다.]

[강서구 장벽 동쪽에서 회색 사신이 관측되었다고 합니다.]

[설마 이번 일도 회색 사신이 벌인 일인 걸까요?]

유리처럼 투명한 장벽을 회색 사신이 주먹으로 뚜시뚜시하고 있는 장면이 TV에 비쳤다.

“역시 사신이가 저기 가 있었어요!”

“그래, 다행이네.”

뉴스 캐스터는 우려가 섞인 반응을 보였지만 우리는 안심했다.

사신이가 서아의 위기를 미리 알고 일찌감치 저기 가 있었을 줄이야.

가볍게 잼잼펀치를 날리던 사신이가 갑자기 장벽에 구멍을 뚫어버렸다.

[아? 회색 사신이 장벽에 구멍을 뚫어버렸습니다!]

[저건 아귀를 공격할 때 썼던 공격 같군요.]

장벽을 뚫고 넘어간 회색 사신이의 오른팔이 잘려 나가는 것이 방송 화면에 잡혔다.

“으, 저거 아플 텐데. 사신이 어떡해.”

예린은 잘려 나간 사신의 팔을 보면서 안타까워했다.

잘린 사신이의 팔은 바닥에 닿기도 전에 노란 불꽃으로 변해서 허공으로 흩어졌다.

장벽에 뚫린 구멍에서는 세찬 모래바람이 뿜어져 나와서 주변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회색 사신이의 공격은 순식간에 무위로 돌아갔다.

장벽은 뚫린 구멍을 순식간에 재생한 것이다.

회색 사신은 통통 다시 장벽을 두들기더니 뒤를 돌아서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뉴스 화면도 바뀌었다.

[회색 사신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 걸까요?]

[회색 사신은 기행을 자주 벌이는 오브젝트로 알려져 있는데, 이번에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나운서와 오브젝트 전문가랍시고 나온 패널은 회색 사신이 이제까지 벌였던 사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별로 관심이 없는 이야기라서, 채널을 돌려버렸다.

“이번에 회색 사신의 인식이 개선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좋겠네. 특히 서아가 좋아할 거야.”

“서아 언니가요?”

“연구소 재정이 부족하다고, 회색 사신 모형을 팔고 싶어 했거든.”

사실 서아는 회색 사신뿐만 아니라 온갖 굿즈를 팔아치우고 싶어 했지만, 협회 측 반대로 무산되었다.

오브젝트를 향한 경각심을 희석시킬 우려가 있다나 뭐라나.

***

붉은 사막의 오아시스.

검은 요원의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 원인은 주로 두 가지에서 기인했다.

첫 번째 원인은 동굴 안에 머무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다행히 동굴의 넓이는 현대의 대형 건축물에 견주어도 될 만큼 넓었기에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사람의 숫자가 늘어난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만약 이 동굴이 사람을 유인하는 타입의 오브젝트라면 사람이 많아질수록 위험해지겠지.

두 번째 원인은 동굴 내부에서 새로이 발견한 흉흉한 구조물들이었다.

돌로 만들어진 높은 제단.

사납게 일그러진 인간과 동물들의 조각상들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벽면에는 경고문처럼 글자들이 잔뜩.

다만 검은 요원도 처음 보는 글자라서 해석할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악!”

동굴 입구에서 갑자기 비명이 들려왔다.

“아저씨 큰일 났어요!”

입구에 도착한 검은 요원을 반겨준 것은 하얗게 질린 금발 소녀와 다리가 잘려 울부짖는 남자.

그리고 동굴 입구에서 서성거리는 거대한 석상이었다.

동굴 입구에 장식되어 있던 거대한 석상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 돌로 된 입을 쩝쩝거리며 남자의 다리를 씹고 있는 석상의 모습.

남자의 다리를 질겅질겅 씹던 석상은 퉤 하고 뭔가를 뱉어냈다.

남자의 다리였던, 이제는 뼈와 살이 섞이고 짓이겨진 덩어리였다.

양다리를 잘린 남자는 입구 앞에 방치된 채 별다른 조치를 받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석상은 입구에서 사람들을 스윽 둘러보더니, 다시 동굴 위의 제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후우.

심호흡한 검은 요원은 충격에 빠진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저, 저 녀석이 여기는 함정이라고 체력이 회복되었으면 빨리 도망쳐야 한다면서 동굴 밖으로 나가자고 했어요.”

남자의 동료로 보이는 남자는 어찌나 놀랐는지, 새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좀만 더 쉬자고 했는데…. 그러면 자기가 먼저 나가서 살펴보겠다면서…. 나갔는데….”

“아 무슨 일인지 알겠습니다. 나가는 사람을 공격하는 종류의 오브젝트인 것 같군요.”

검은 요원의 예상대로 이곳은 함정이 맞았다.

그저 나가지만 못하게 하는 함정이라면 다행이겠지만, 동굴 내부에도 비슷한 석상이 발견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결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

검은 요원이 머무르는 커다란 동굴 안, 트리니티 소속 연구원 두 명이 몰래 쑥덕이고 있었다.

“팀장님. 깊숙한 곳으로 가보니, 소장님이 알려주신 ‘문자’가 쓰여 있었습니다.”

“그래? 그럼, 한번 가서 보자.”

그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천천히 동굴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건 꽤 멋지군.”

붉은빛으로 물든 석상들과 별빛을 머금은 호수 표면을 보면서 트리니티 연구소 팀장은 감탄했다.

천장에 뚫린 구멍에서 내리쬐는 붉은 달빛이 호수 표면에 부딪혀서 동굴 내부를 신비롭게 비춰주고 있었다.

붉은빛을 받는 거대한 석상들 옆으로 연구원이 말했던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저는 아직 진화 단계가 낮아서 제대로 읽을 수가 없더군요.”

“나도 완전히 읽을 수는 없을 테지만, 한번 읽어봐야지.”

문자가 새겨진 벽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팀장의 두 눈이 점점 툭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엄지손가락 두께의 검은 핏줄이 툭툭 불거지고, 눈이 너무 커져서 두개골을 으스러트리기 시작했다.

팀장은 벽면에 손가락을 대고 차근차근 문자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음, 사람이 100명 모이기 전에는 안전한 유적이군. 사람들이 더 이상 들어서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 건가?”

“그 정도면 어떻게든 설득을 해볼 수 있어 보이긴 하네요.”

팀장은 문자를 한줄 한줄 더 읽어나갔고, 튀어나온 눈알에도 혈관이 돋아나기 시작해서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보였다.

“다른 탈출 방법도 있어. 사람 한 명을 산 제물로 바치면 된다는군.”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던 눈알은 순식간에 원래 크기로 줄어들었고, 팀장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아, 죽겠군. 진화 단계를 빨리 올려서 좀 자연스럽게 힘을 꺼내쓸 수 있게 돼야지 원….”

팀장의 툭툭 튀어나온 혈관도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고, 거대화했던 눈알도 원래대로 돌아갔다.

“우선, 병신들을 설득해서 이 유적에 아무도 들이지 못하도록 하자고. 그리고 만약 그게 힘들어진다 싶으면 다른 탈출 방법을 쓰고.”

“인신 공양이 훨씬 설득하기 힘들 것 같은데요?”

“멍청한 소리를 하는군. 당연히 산 제물을 바칠 땐 여기 있는 사람을 전원 죽이고, 우리끼리 탈출해야지.”

“아, 하긴 저희의 힘이면 그 정도는 쉽겠죠.”

큭큭큭, 하고 웃는 트리니티 연구소 연구원의 웃음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

***

파괴가 안 되네.

벽을 두들겨 보지만 장벽은 굳건했다.

장벽의 파괴 조건은 <본체의 파괴.>.

본체가 파괴되기 전까지 무한히 재생하는 장벽이었다.

재생 속도가 느렸다면 잔뜩 부순 다음 서아를 대피시키면 될 텐데, 재생 속도도 엄청 빨랐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이질적으로 커다란 붉은 달이 보였다.

저게 본체겠지.

나는 ‘눈’으로 붉은 달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붉은 해골을 사막의 중앙에 배치하고, 불을 붙이고 그 위에서 춤을 춘다.>

길다.

그리고 또 뭔 이상한 조건이야?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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