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상복을 입은 여자가 보였다.
그녀는 품에 아이를 안고 사막을 헤매고 있었다.
품에 안긴 아이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호흡은 약하고 얕은 걸 보아 열사병이었다.
그늘 한 점 없는 사막.
강서구에 갑자기 닥친 재앙은 많은 주민을 절박한 환경으로 내몰았다.
그녀는 신발도 없이 타는 것처럼 뜨거운 모래 위를 걸어 나갔다.
발바닥은 뜨거운 모래에 눌어붙었지만, 그늘 한점, 물 한 컵을 얻기 위해서 하염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앞에 신기루처럼 거대한 천막들이 펼쳐진 것이 보였다.
길쭉한 기둥과 넓은 캐노피로 이루어진 웅장한 구조의 천막은 물결 모양의 모래 언덕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실루엣을 연출했다.
바람에 나부끼는 천의 부드러운 펄럭임에 따라 천막의 그림자도 조용히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천막 그림자 밑에 잔뜩 나열된 과일들.
수박처럼 하나같이 즙이 많고 수분을 충분히 머금고 있는 과일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었다.
평상복의 여자는 허겁지겁 그 천막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신기루, 혹은 자신의 고통이 만들어 낸 환각이 아니길 빌면서.
천막에 다가갈수록 그 형상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신기루는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다가갈수록 꺼림칙한 기분이 느껴졌다.
천막 밑에는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었는데, 미동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다.
천막 안에 여자가 들어서자, 같은 사막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서늘한 온도가 그녀의 달궈진 피부를 식혀주었다.
“손님이 오셨군.”
그녀가 천막에 들어서자, 가장 가까이에 앉아있던 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커다란 지팡이를 양손으로 잡고 의자에 앉아있는,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었다.
노인의 복장은 곳곳이 보석으로 장식돼서 과할 정도로 화려해 보였다.
“아! 저기, 저희 아이가 열사병에 걸렸어요. 여기 있는 과일을 좀 먹여도 될까요?”
“그럼, 당연히 줘야지요. 이 노인네가 적적해서 그런데 간단한 퀴즈 문답을 해준다고 약속만 하면 과일 정도는 얼마든지 내어줌세.”
인자한 표정으로 웃는 노인이지만 그 표정이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하지만 여자는 그런 이상한 점을 일일이 신경 쓸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네, 네! 약속할게요!”
여자는 약속한다고 다급하게 선언하고 수박을 하나 쪼개서 아이에게 허겁지겁 먹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서늘한 천막의 온도 때문인지 꽤 상태가 괜찮아진 것처럼 보였다.
아이의 상세가 꽤 괜찮아 보이자, 여자는 한숨을 돌리면서 자신도 수박을 한입 먹어보았다.
과즙이 풍부하고, 상큼한 맛.
먹고 나서도 기묘한 여운을 남기는 신비한 맛이었다.
수박에서 도저히 날 리가 없는 맛이 느껴지자, 여자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제야 수상하기 그지없는 노인과 천막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오브젝트!
[아 이런, 벌써 눈치챈 건가? 이 세계는 특이하군. 무지렁이들이 눈치채는 게 빨라.]
딱. 딱. 딱.
고개를 들어서 노인을 쳐다보자, 노인의 주름진 피부가 모래로 변해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노인의 육성은 이제 들리지 않았고, 해골이 이빨을 부딪치면서 웃는 딱딱 소리만 났다.
어느새 노인 해골의 주변으로 칼을 든 해골들이 병풍처럼 늘어섰다.
[자, 그럼 약속한 대로 퀴즈를 내겠네.]
소리가 아니라 머릿속으로 직접 들리는 노인 해골의 목소리는 음산하고 사악함이 가득했다.
해골들이 든 칼에서는 짙은 피 냄새가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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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흉악한 분위기를 가르고 뭔가가 나타났다.
뚜방뚜방.
황금색의 작은 무언가.
저런 생물은 본 적이 없으니까, 오브젝트겠지.
허리춤에 손을 얹고 노인 해골을 노려보는 작은 오브젝트.
척 봐도 약해보였는데, 노인 해골의 반응은 좀 이상했다.
[끄응.]
노인 해골은 탄식하면서 뒤로 슬금슬금 물러섰다.
그때 천막 위의 펄럭이는 천을 붙잡고 황금색 얼굴이 불쑥.
과일 속에서도 불쑥.
탁자 밑, 기둥 뒤, 의자 등받이 뒤 등의 온갖 곳에서 작은 얼굴이 튀어나왔다.
귀엽게 생긴 얼굴들이 잔뜩 튀어나온 꼴이 조금 귀여웠는데, 노인 해골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지팡이도 던져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도 예상 밖이었다.
황금색 오브젝트들이 통통 튀어 나가 해골과 노인 해골을 산산이 박살 내버린 것이다.
황금색 오브젝트의 박치기를 당한 해골들은 모두 모래가 돼서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노인 해골을 처리한 오브젝트는 칭찬을 바라는 것처럼 우르르 내 곁으로 몰려왔다.
갑작스러운 오브젝트의 접근에 온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어찌 보면 생명의 은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귀여운 외관의 오브젝트, 현대인이라면 무서워해야 하는 조합이었다.
시무룩한 표정의 오브젝트들.
예쁜 황금색으로 영롱하게 빛나고, 왠지 기분 좋은 냄새가 나는 오브젝트들.
자세히 바라보고 있으니까, 왠지 해를 끼치진 않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느낌이 뇌리를 지배했다.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자, 오브젝트 한 마리가 꾸물꾸물 손바닥 위에 올라섰다.
어, 이거.
잘 보니까 회색 사신이랑 똑같이 생겼잖아!
나는 화들짝 놀라서, 황금색 사신을 집어던졌다.
바닥에 널브러진 황금색 사신은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어… 미안해?”
그 표정이 너무 슬퍼 보여서, 엉겁결에 사과를 해버렸다.
손을 다시 내밀자, 황금 사신이 나를 힐끗 보더니 다시 조심스럽게 손바닥 위에 올라왔다.
다시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이, 손가락 하나를 꾹 껴안고 있는 황금 사신.
“미안해. 다시 안 던질게!”
황금 사신이 볼에 달라붙는 것과 동시에 잔뜩 나타났던 황금 사신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내게 남은 것은 황금 사신 한 마리.
하지만 이상하게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
갑작스러운 사망 사고로 뒤숭숭한 분위기의 동굴.
그곳에서 트리니티 소속의 연구원들이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여러분! 주목해 주세요!”
‘설마 무언가를 알아낸 건가?’ 이런 기대를 하고 사람들은 트리니티 연구소 연구원의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한국 최고의 연구소 소속이 허튼소리를 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충분히 주의를 끌었다고 생각한 연구원은 목소리를 높여 말을 시작했다.
“저희가 이 오브젝트의 구조를 조금 해석해 냈습니다. 그것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 조금 자리를 옮기도록 하죠.”
트리니티 연구원들은 사람들을 동굴 깊숙한 곳으로 이끌었다.
거대한 호수 너머, 거대한 석상과 제단이 있는 곳에 도착한 트리니티 연구원은 설명을 시작했다.
“여기 보시면, 이런 식으로 문자가 적혀 있습니다. 이 문자는 꽤 오랫동안 트리니티 연구소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문자인 덕분에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로선 다행스러운 일이죠.”
연구원은 트리니티 연구소 찬양 반, 그리고 해석된 문자에 대한 이야기 반을 섞어서 풀어놓았다.
그리고 연구원이 해석한 문자는 검은 요원이 예측했던 결말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동굴 안에 사람들이 100명이 넘으면 석상들이 동굴 내부 사람들을 모두 죽인다.>
<동굴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죽인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꽤 타당해 보이는 이야기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오아시스에 그런 함정이 없다면 더 이상할 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입니다. 동굴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서,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궁금한 것을 묻는 질의응답이 계속 이어졌다.
까치산 콘퍼런스에 참가한 연구원들이 동굴 내부에 다수 있는 만큼 질문들도 다양했다.
<왜 이런 정보를 트리니티 연구소에서는 숨기고 있었냐?>
같은 질문부터 시작해서 해석 방법을 물어보는 질문까지 다양했다.
“아, 저희가 말단 연구원인지라 자유롭게 이야기 못 하는 것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물론 트리니티 연구원이 명쾌하게 답을 해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사람들이 문자가 새겨진 벽에 모여서 떠드는 사이, 금발 소녀는 제단 쪽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아저씨, 제단에 박쥐들이 잔뜩 그려져 있어요! 무슨 뜻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군요. 차라리 트리니티 소속 연구원에게 물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금발 소녀가 해맑은 표정으로 연구원에게 물어봤지만 돌아온 답은 ‘모르겠습니다.’ 였다.
“아직 해석이 완벽하지 않다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딱히 해석을 못 들어서 실망한 게 아니에요, 아저씨. 연구원들의 해석에는 제단 이야기가 없는데, 아무리 봐도 제단이 더 중요해 보이지 않아요?”
확실히 금발 소녀의 말대로였다.
제단은 크기나 규모, 화려함으로 봐도 석상이나 글자가 새겨진 벽보다 중요해 보였으니까 말이다.
*
트리니티 연구원들의 오브젝트 해석을 근거로 사람들은 동굴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다.
“꺼져!”
무기로 쓸만한 도구들을 모아서 보초들에게 쥐여주고, 들어오려는 사람을 위협해서 쫓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사막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동굴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많았다.
더위에 지치고, 갈증에 죽어가는 사람들.
그들은 날붙이로 위협당해서 동굴로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동굴 근처 그늘에 점점 모여들기 시작했다.
금발 소녀는 우려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저 사람들이 갑자기 쳐들어오지 않을까요?”
“아마 그렇겠죠. 뭔가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숫자 차이가 나서 들어올 엄두를 못 내고 있지만, 이 차이는 꽤 빨리 좁혀질 겁니다.”
그리고 트리니티 소속 연구원들은 그 대치 중인 사람들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뚜방뚜방.
사막을 걸어 다닌다.
<붉은 해골을 사막의 중앙에 배치하고, 불을 붙이고 그 위에서 춤을 춘다.>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조건이다.
나처럼 조건을 볼 수 없으면, 도대체 어떻게 죽이는 방법을 알아내라는 건지 원.
붉은 해골을 찾기 위한 뚜방뚜방 여정.
사막의 중앙은 사막 전역에 황금 사신들을 퍼져나가게 만들어서 찾기로 했다.
사막에 골고루 퍼진 황금 사신들의 중앙이 사막의 중앙이겠지 뭐.
내 의도대로 움직인 적이 별로 없는 황금 사신들이었지만, 이번에는 의도대로 사막 전역으로 잘 퍼져나가는 중이었다.
붉은 해골을 찾기 위해서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해골은 보여도 붉은 해골은 보이지 않았다.
붉은 해골 대신 장작만 잔뜩 쌓이고 있었다.
붉은 해골은 보이지 않지만, 황금 사신을 어깨 위에 하나씩 얹고 있는 사람들을 꽤 자주 마주쳤다.
“헉, 회색 사신!”
그 사람들은 나를 보고 두려워하다가도, 어느샌가 다가와 있었다.
“황금색 사신. 네가 보내준 거지? 고마워.”
두려움과 고마움이 혼재된 감정.
장작을 얻으면서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으면, 몇몇은 슬금슬금 다가와서 꼭 껴안기도 했다.
귀찮지만, 장작을 위해서 어쩔 수 없지.
이래서야 붉은 해골을 언제 찾을지 알 수가 없네.
*
장작 수집과 해골 수색을 하던 중, 저 멀리 있는 굉장히 수상한 곳을 발견했다.
붉은색 바위로 만들어진 거대한 동굴.
멀리서 보면 왠지 입 벌린 해골 모양으로 보이는데, 저게 붉은 해골인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