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의 근처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타는 듯한 붉은색의 사막을 멍하니 바라봤다.
동굴의 입구에는 어느새 사람들이 바글바글.
“나 하나 정도는 들어가도 되잖아!”
“제발, 우리 애라도 들여보내 주세요!”
동굴 입구에는 들여보내달라고 사정하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아저씨한테 99명까지 선착순으로 받아주면 안 되냐고 물어봤지만, 힘들 거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저씨가 힘들다고 하는 거면 안 되는 거겠지.
평평한 바위 위에 앉아서 턱을 괴고 사람들을 구경했다.
“100명 제한이니 뭐니, 그거 다 너희들이 꾸며낸 거 아니야?”
“오브젝트를 해석하는 게 그렇게 쉬우면 연구소가 그렇게 많을 이유가 뭐 있어!”
“해석을 다시 해보라고 해! 동굴 크기를 봐. 한 천명 정도는 괜찮을 수도 있잖아!”
왠지 화가 잔뜩 난 사람들이 동굴 입구로 몰려들어서 항의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억지로 들어올 것 같은 분위기.
사실 동굴 안이든 밖이든 물과 그늘, 이 두 가지뿐인 건 똑같은데 왜 이렇게 들어오고 싶어 하는 걸까?
소란스러운 동굴 입구에는 여전히 다리가 잘린 시체가 버려져 있었다.
치우자고 했지만, 어른들은 본보기로 두는 게 좋다면서 치우지 않았다.
아저씨는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물통을 나르고, 동굴 입구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저 관심의 절반만이라도 나에게 기울여 주면 좋을 텐데….
“슬슬. 한계로군.”
트리니티 연구원 중 한 명의 음침한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
도대체 뭐가 한계라는 걸까?
궁금함에 뒤를 돌아봤지만, 입구에서 서성거리던 트리니티 연구원들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화난 사람들이 물러가자, 겨우 휴식을 취하는 아저씨의 표정은 어두워 보였다.
“아저씨,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동굴 밖의 그늘이 거의 다 찼습니다. 이제 사람이 더 늘어나면 문제가 생기겠죠.”
“한계?”
“네, 아가씨. 이제 한계입니다.”
트리니티 소속 연구원들이 했던 말이 이제서야 이해가 됐다.
아저씨와 즐겁게 대화하던 도중, 동굴 안의 분위기가 변했다.
“괴물! 괴물이 나타났다!”
끔찍하게 생긴 괴물이 징그럽게 천장을 기어다니며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무섭게 생겨서 아저씨의 손을 꾹 잡았다.
채찍처럼 긴 팔.
기괴할 정도로 커다란 눈알.
푸른색 피부에, 검은 혈관이 툭툭 불거진 괴물.
“도대체 뭐야?”
“이런 게 나타난다는 소리는 없었잖아!”
공포에 질린 소란스러운 사람들.
천장 위에서 검은 침을 질질 흘리는 괴물들은 마치 핥듯이 그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뭔가를 찾고 있는 건가?
크크크크크.
낮게 울리는 괴물의 하울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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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비웃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가씨, 소리를 죽이고 제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와 주세요.”
아저씨의 낮게 깔린 목소리.
공포에 질린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 보여서 조금 안심이 됐다.
아저씨는 능숙한 걸음으로 동굴 중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저씨는 주위를 살펴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트리니티 소속 연구원 두 명이 보이지 않는군요.”
“한참 전부터 보이지 않던데, 동굴 깊숙한 곳에서 먼저 당한 게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지성이 느껴지는 괴물 두 마리와 사라진 연구원 두 명. 충분히 수상해 보입니다.”
아저씨에게 소근소근.
무서운 상황이지만, 아저씨와 손을 잡고 있어서 그런지 전혀 무섭지 않았다.
사사삭.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하던 괴물들은 바퀴벌레처럼 천장을 기어가더니 뛰어 내려와, 입구를 가로막듯이 섰다.
그와 동시에 아저씨는 내 팔을 아플 정도로 잡아당기며 동굴 깊은 곳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입구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과 피와 살이 흩뿌려지는 소리.
얼핏 뒤를 돌아본 동굴 입구에서는 괴물들이 채찍처럼 생긴 팔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사람들을 토막 내고 있었다.
호수 너머 제단까지 도망쳤지만, 어차피 막다른 길.
아저씨와 나는 순식간에 따라잡혔다.
양쪽에서 슬금슬금 다가오는 괴물들을 향해 아저씨가 소리쳤다.
“트리니티 소속 연구원이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응? 그거야 당연히.”
갑자기 괴물이 사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말대로 트리니티 연구원이었다!
하지만 사람 말을 하던 괴물은 반대쪽에 선 괴물이 날린 채찍을 맞고 쓰러졌다.
“아, 팀장님. 갑자기 때리시면 저 섭섭합니다.”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입을 열고 그래?”
조금 어눌했지만, 확실히 언어로 말하는 괴물들.
“아니, 방금 숫자까지 세면서 죄다 죽였으면서 뭔. 누가 듣는다고 그래요?”
“밖에서 들어올 수도 있다는 건 왜 생각을 못 해? 누가 살아있을 수도 있고. 조심하라고 했잖아!”
팀장이라고 불린 괴물이 고개를 돌리고는 말했다.
“왜 이러는지는 알 것 없고. 죽여.”
팀장의 턱짓에 반대쪽 괴물의 채찍이 엄청난 속도로 나를 향해 뻗어 나왔다.
죽음이 코앞인데도 전혀 실감이 되지 않았다.
퍼석하는 큰 소리와 함께 피가 잔뜩 튀었다.
나를 감싸 안고 있는 아저씨.
“아… 아저씨.”
그리고 배에서 느껴지는 격통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
검은 요원과 금발 소녀가 한 덩어리가 돼서 바닥에 쓰러지자, 트리니티 팀장이 소리쳤다.
“야 병신아. 한 명은 살리라고 했잖아!”
“아니, 이 순간에 타인을 감싸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죠. 머리색도 완전히 다르니까 가족도 아닐 텐데….”
투덜거리며 시체를 살펴보던 팀원은 소리 높여서 팀장을 불렀다.
“팀장님! 이 아이 살았어요!”
“어? 그게 말이 돼? 우리 힘이면 10명도 한꺼번에 관통할 텐데.”
“이 여자, 좋은 오브젝트 가지고 있네요. 중국 쪽에서 온 거요. 사람 만명쯤 갈아서 만든다는 소문이 있던 그거. 목숨 한번은 무조건 구해준다는 오브젝트라던데, 효과 죽이네요.”
정신만을 잃은 채, 안정적으로 새근새근 잠든 소녀를 보며 팀원이 말했다.
“뭔가 높으신 분의 딸인가? 복잡하게 됐군.”
팀장은 착잡한 목소리로 말하면서도 여자를 제단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그래도 돌이킬 순 없겠지. 뭐, 들키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트리니티 소속 연구원들은 어느새 인간 모습으로 돌아와서 구석에 숨겨둔 옷가지를 챙겨 입기 시작했다.
복장을 모두 챙겨 입고 제단 위의 단검을 들어 올리고는 소녀의 심장에 내리찍을 준비를 하는 팀장.
그 팀장을 보면서 팀원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흘렸다.
“해석 확실하겠죠?”
“갑자기 무슨 소리야?”
“솔직히 팀장님도 해독률 50% 조금 넘는 수준인데, 조금 불안해져서요. 그냥 동굴에서 숨어서 구조를 기다리는 건 어때요?”
“음, 사실 그편이 좀 더 안전해 보이긴 하지. 하지만 높으신 분의 따님을 공격한 시점에서 구조를 기다릴 순 없어.”
팀원은 작은 목소리로 ‘아, 그러네요. 외통수였네요.’라고 하며 동의했다.
팀장은 그대로 단검을 소녀의 심장에 내리꽂았다.
그와 동시에 팀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팀장님? 팀장님?”
팀원은 머리를 마구 헝클이며 짜증을 냈다.
“아, 귀찮게 됐네.”
아마 산 제물 하나당 한 명만 탈출할 수 있던 거겠지.
“뭐, 동굴을 깨끗하게 정리해 두면 산 제물감으로 누구라도 들어오겠지?”
팀원은 혼잣말로 툴툴거리면서 동굴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
음, 아무리 봐도 붉은 해골이 맞는 것 같네.
손 카메라로 해골을 비춰보며 이리저리 둘러봐도 붉은 해골이 맞았다.
입 벌린 거대한 해골과 그늘을 만들고 있는 양손.
아마 파괴 조건을 확인하면 벌떡 일어나서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들 것 같은 느낌.
붉은 해골로 보이는 바위를 향해서 다가가자, 사람들이 뭔가를 두려워하면서도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동굴에서 괴물이 나와서 다 죽여버렸대.”
“어떡하지? 저기가 아니면 물을 구할 수가 없을 텐데….”
유령화 상태로 몰래 접근하자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직 황금 사신이 도달하지 못한 지역이라 그런지, 사람들 어깨 위에는 황금 사신이 없었다.
황금 사신은 나랑 다르게 사람들 구호 활동을 하느라 속도가 좀 느리니까 어쩔 수 없지.
바위 근처를 서성이는 사람이 너무 많은걸?
붉은 해골을 깨우면 다치는 사람이 너무 많아질 것 같았다.
고민스러운 와중 뇌리에 생각하나가 둥실 떠올랐다.
히히.
왠지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어.
***
퍼엉!
모래가 크게 폭발했다.
“회색 사신이다!”
“사신이 나타났어!”
회색 사신은 갑자기 나타났다.
동굴 근처 그늘에서 쉬고 있던 우리들을 회색 사신이 갑자기 습격한 것이다.
동굴에서의 학살극을 본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우리들은 공포에 질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회색 사신은 모래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서 우리들의 발을 잡고 끌어당겼다.
만약 특급 위험도의 오브젝트에게 끌려가면?
아마 죽음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허억. 허억.”
숨을 고르고 있다가, 바닥을 바라보면 회색 사신이 모래 위로 머리를 반만 내밀고 노려보고 있었다.
“으아아아, 살려줘!”
또 한 명의 동료가 회색 사신에게 발을 붙잡혀서 몸부림쳤다.
도대체 왜 회색 사신이 여기에 있는 거야?
“하하하, 바위야! 바위로 도망쳐!”
바위 위로 올라간 동료가 웃으면서 우리들을 불렀다.
“바보야! 도망쳐!”
그의 등 뒤에는 이미 회색 사신이 머리만 바위 위로 내놓고 서서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붉은 바위를 뚫고 나온 회색 사신의 양손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으아아아악!”
바위 위로 올라간 동료는 바위를 부수면서 천천히 쫓아오는 회색 사신을 피하려고 계속 바위 위로 올라갔지만, 바위의 크기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우리들의 도주극은 동굴에서 멀리 떨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숨을 돌리고 동굴 쪽을 바라보면 상어 지느러미처럼 모래 위를 유영하는 회색 사신의 머리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