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덩.
트리니티 연구원이 시체를 호수 속으로 던져넣었다.
식수로 사용하는 수원을 오염시키는 짓이었지만, 연구원은 거리낌 없이 호수 속에 시체를 던져넣었다.
연구원은 이 동굴에서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으니까 당연한 선택이었다.
오히려 별 쓸모없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누가 오면 식수라면서 이 호수를 보여줘야지. 그리고 호수 밑의 시체를 보면 얼마나 놀랄까?’
‘그리고 뒤를 돌아보면 짜잔! 진화체로 변한 내가 서 있는 거야.’
‘그러면 표정이 정말 볼만하겠지.’
속으로 웃으면서 혹시 놓친 시체가 없는지 꼼꼼히 살피고 또 살폈다.
이렇게 발작적으로 세심하게 살피는 이유?
그건 치운 기억이 없는 시체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제단 위에 방치된 소녀의 시체와 검은 양복을 입은 남성의 시체.
소녀가 놓인 자리에는 핏자국만 덩그러니.
남성이 있던 자리에도 내장 조각만 좀 흩어져 있고 시체는 사라진 상태였다.
치운 기억도 없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 뒤로부터는 정신을 놓고 일해서 치워놓고 까먹은 거로 생각하고, 꼼꼼하게 일을 하는 중이었다.
연구원의 노력으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토막 난 시체들이 가득한 동굴은 이제 시체 하나 없이 말끔하게 변해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바닥과 벽면에 남은 핏자국.
그리고 동굴 내부에 가득한 피 냄새뿐.
피 냄새는 기다리면 빠지겠지만 핏자국은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아, 도대체가 피 냄새가 안 빠지네. 이러면 나가린데.”
연구원은 혼잣말로 투덜거리면서 동굴 구석에 앉아서 찾아올 산 제물을 기다렸다.
***
모래 속에서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모래 속의 상어 작전으로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을 전부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건 저 동굴 안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뿐.
붉은 해골 근처로 다가가자 피 냄새가 잔뜩 났다.
그것도 인간의 피 냄새.
“아, 도대체가 피 냄새가 안 빠지네. 이러면 나가린데.”
동굴 안에서 들려오는 짜증이 담긴 목소리.
목소리를 쫓아 들어간 동굴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바닥과 벽면, 그리고 천장까지 붉은색으로 덧칠되어 있었다.
붉은 바위와 붉은 핏물은 확연히 그 질감이 달라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직 굳지 않은 핏물이 기괴한 무늬를 그리면서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바닥에는 인간의 살 조각이 아무렇지도 않게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끔찍한 환경에서 태연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인간이 있었다.
아니, 괴물이 있었다.
인간처럼 생겼지만,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과 오브젝트가 섞인 추악한 존재.
인간에 대한 지독한 악의가 그의 혈관 속에서 흐르고 있었다.
태생부터 오브젝트가 아니라 뭔가를 주입 당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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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흉측한 존재가 내 발소리를 듣고는 화색이 만연한 얼굴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 안녕하세요! 반….”
그리고 내 모습을 확인하고는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회… 회색 사신! 아니, 왜 갑자기 회색 사신이 여기에?”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뒤로 물러서는 남자.
생각보다 엄청나게 무서워하네?
“그… 그래! 너는 인간을 공격하지 않잖아? 나는 인간이라고! 하하.”
자신을 인간이라고 자칭하는 괴물.
하지만 내 눈에는 오브젝트보다 인간에게 해로운 존재로 보이는걸?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 뚜방뚜방 계속 앞으로 걸어 나갔다.
“서… 설마 눈치챈 건가? 연구소에서는 절대로 발각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어느새 동굴 벽까지 몰린 남자는 굉장히 절박해 보였다.
“싫어. 안돼 죽기 싫어! 제발 살려줘! 제발!”
내가 가까이 다가오자, 머리를 감싸 안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더니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옷가지가 폭발하듯이 터져나가더니 괴물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나는 악취가 엄청나게 심해졌다.
그 끔찍한 냄새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뒤로 물러섰다.
“그… 그래. 나는 충분히 강해. 아무리 회색 사신이라도 무서워할 필요는 없어.”
자신에게 최면을 걸듯이 중얼거리는 괴물.
아마 내가 뒤로 물러난 것에서 가능성을 봤나 보다.
사실은 나랑 비교도 할 수 없이 약하면서.
“나는 이길 수 있다. 이길 수 있어!”
채찍처럼 변한 손을 빙빙 돌리는 괴물.
그리고 바닥의 바위가 부스러질 정도로 강하게 땅을 박차고, 그 흉측한 손을 나를 향해서 내리찍었다.
유령화로 채찍과 몸을 겹치게 만들고, 실체화.
“끄에에에엑!”
팔이 순식간에 절단된 괴물은 자기 팔을 움켜쥐고 바닥을 이리저리 뒹굴었다.
그리고 좀 지나자, 전신의 혈관이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마치 혈관이 몸에서 벗어나려고 발광하는 것처럼 보였다.
“안돼! 균형이! 아아악!”
핏줄이 괴물의 살을 찢고 헤집었다.
마치 혈관만 따로 다른 생물체처럼 움직이면서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팔다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리고 몸부림치던 괴물은 어느 순간 비명을 멈추고 죽어버렸다.
그리고 ‘펑’ 하고 폭발해 버렸다.
남은 것은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검은색 혈액.
분명 인간에게 해로운 짓으로 만든 피.
구역질이 날 것만 같은 냄새.
절대 만지고 싶지 않은 냄새가 났다.
나는 장난삼아 황금 사신을 검은 혈액 속에서 소환해 보았다.
짠! 하고 포즈를 취하면서 튀어나오는 황금 사신.
하지만 이내 자기 몸에 잔뜩 묻은 검은 핏물에 기겁하더니 울상을 지으면서 털썩 바닥에 쓰러졌다.
마치 자신은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널브러졌다.
히히 웃으면서 유령화를 했다 풀었다를 반복하자, 그걸 보고 황금 사신이 유령화로 핏물을 제거하고 부활했다.
오, 생각보다 빨리 눈치채네.
그리고 나에게 다가와서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뚜시뚜시.
이번에는 좀 많이 화가 났는지, 공격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수리를 계속 내려치는 황금 사신을 머리 위에 내버려 둔 채, 동굴 깊숙한 곳을 탐사했다.
동굴에 핏자국은 가득하지만, 시체는 없어서 이상했는데,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동굴 내부 호수에 시체가 가득했다.
으, 이 호숫물은 못 먹겠네.
***
붉은 해골 머리 위에 걸터앉아서 한참 동안 붉은 달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밤은 끝날 생각을 하지 않고 붉은 달이 여전히 높게 떠 있었다.
시선을 내려보면 주변 어디를 봐도 지평선뿐.
꽤 높은 해골 위에 앉아있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이었다.
바닥을 내려다보면 박살이 난 석상 파편이 흩어져 있었다.
동굴 밖으로 나오려고 하니까 갑자기 드롭킥을 날리길래 부숴버렸다.
머리 위에는 새근새근 잠이든 황금 사신 한 마리.
자면서도 가끔 머리를 통통 치고 있는데, 얼마나 화가 났길래 이러는 거야?
붉은 달을 올려다보는 이유는 ‘사막의 중심’ 때문이었다.
이미 사막 전역으로 황금 사신들이 골고루 퍼진 상태였다.
하지만 여전히 사막의 중심을 모르겠다.
깔끔한 구형의 돔.
하지만 그 돔 안에서 내 위치가 계속 변했다.
처음에는 사막이 강처럼 흐르는 줄 알았는데, 돔이 움직이는 것일 줄이야.
아무리 봐도 저 움직이는 달의 아래가 사막의 중심인 것 같았다.
황금 사신들은 이미 모든 인간과 함께하고 있다.
이제 인간은 안전해.
주변에 사람도 없다.
자 붉은 해골을 깨울 시간이야.
나는 붉은 해골에서 훌쩍 뛰어내리면서, 황금 사신들을 불러 모았다.
***
산처럼 거대한 붉은 해골이 잘 보이는 모래 언덕 위에서 붉은 해골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뒤로는 1인 1사신 일자리를 찾지 못한 실직 사신들이 잔뜩 늘어서 있었다.
‘눈’을 이용해서 파괴 조건을 확인한다.
<심장의 파괴.>
파괴 조건을 확인하기 무섭게, 사막이 맥동하기 시작했다.
쿠르릉.
사막의 모래 속에서 불기둥이 솟구쳤다.
그 불꽃들이 붉은 해골로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해골에 붙어있는 돌조각들이 녹아내리면서 동굴처럼 보이는 흔적은 사라졌다.
남은 것은 상당한 박력이 느껴지는 오래된 붉은 해골.
그리고 불타는 안광을 빛내면서 그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엎드려 있던 해골이 일어난 자리에는 지하수가 샘솟는 호수만이 쓸쓸하게 남아있었다.
모래 밖으로 나온 것은 상반신뿐이지만, 그 크기는 빌딩이랑 비견할만했다.
갈비뼈 안쪽에는 뼈에 달라붙어 있는 불타는 심장이 보였다.
아마 저게 약점이겠지.
쿵.
쿵. 쿵.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상반신만 나온 해골은 마치 물살을 가르듯이 모래를 가르면서 우리를 향해서 걸어오기 시작했다.
붉은 해골이 맹렬하게 불타는 두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해골은 살점 없이 텅 빈 입을 크게 벌리면서 불을 뿜어냈다.
그 크기만으로도 위압적인데, 모래를 녹일 정도의 불길을 뿜기까지 하다니.
평범한 사람이 봤으면 그 모습이 꽤 흉흉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로서는 알아서 불도 스스로 붙여주는 친절한 해골로 보였다.
고마워 해골아!
주변 모래가 유리로 변할 정도로 맹렬한 불꽃 속.
나와 황금 사신들은 멀쩡했다.
나는 자신 있는 미소를 지으면서 손짓으로 해골을 가리켰다.
저 해골은 해로운 해골이다!
인간에게 아주 해로워!
내 등 뒤에서 시작된 황금 사신의 돌진.
황금 사신의 물결은 나무를 갉아 먹는 흰개미처럼 붉은 해골 위로 빼곡하게 달라붙었다.
해골을 보호하는 고온의 불꽃은 소용없었다.
해골은 커다란 손을 마구 내려치면서 떼어내려고 했지만, 허튼 노력이었다.
튕겨 나가도, 더 많은 황금 사신이 달라붙었다.
마침내 붉은 해골의 격렬한 저항을 뚫고 한 마리의 황금 사신이 심장을 뚫고 지나갔다.
심장은 마치 구멍 뚫린 물풍선처럼 불꽃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오오오오오오.
해골의 전신에서 기이한 울림이 사막 전체로 울려 퍼졌다.
붉은 해골은 쓰러져 가는 몸통을 양팔로 지탱한 채, 그대로 행동을 멈췄다.
황금 사신도 행동을 멈추고, 해골을 올려다보았다.
해골 눈구멍의 희미하게 일렁이는 불꽃이 왠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전과는 다르게 묘하게 차분하고 감정이 담긴 눈빛이었다.
상처에서 불꽃을 토해내면서 천천히 뛰던 심장이 완전히 멈추자, 붉은 해골이 가루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
엄청난 흙먼지를 풍기면서 쓰러진 붉은 해골.
크기가 크기이니만큼, 먼지가 사라지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심장 그리고 남은 뼈들은 모두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남은 것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는 해골 머리뿐.
자 이제, 저 위에서 춤만 추면 되는 건가?
황금 사신이 대신 춰주진 않을까 싶어서 돌아보니, 황금 사신은 아무 생각이 없는 해맑은 표정으로 웃고만 있었다.
으, 귀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