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활 불타고 있는 거대한 붉은 해골을 올려다보던 중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어어어어.”
그 소리를 쫓아가 보니, 지금은 재가 되어버린 심장이 있던 자리에 정체불명의 점액 덩어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검고, 끔찍한 냄새가 나는 검은 덩어리.
정말 참기 힘든 지독한 냄새가 나네.
나보다 감각이 예민한 황금 사신들은 이미 멀찌감치 도망간 상태였다.
도대체 이게 뭘까.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까, 뭔가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죽기 싫어.’
‘살려줘.’
뭉개지고 찌그러진 작은 소리였지만, 분명히 ‘살려줘’라고 들렸다.
사람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이 덩어리랑 비슷한 악취가 나는 녀석을 본 적 있었지.
동굴에서 나를 공격했던 오브젝트가 섞인 인간 괴물.
이 녹아내린 덩어리도 자세히 보니까, 인간 모양으로 꿈틀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해로운 괴물이 한 마리나 더 있었단 말이야?
그럼 죽어야지.
나는 별 고민 없이 점액 인간의 머리를 겹치기로 날려버렸다.
부글부글.
머리를 날려버리자, 점액이 끓으면서 요동치더니 ‘펑’ 하고 터져버렸다.
머리가 날아가기 전까지 ‘죽기 싫어. 살려줘.’ 등등을 계속 중얼거리던 점액 인간은 동굴 괴물과 똑같이 검은색 피만 남기고 죽었다.
점액 덩어리는 이제 더 이상 덩어리를 이루지 못하고 검은 피가 되어 사방으로 흐르면서 퍼져나갔다.
콩콩.
잠든 채, 내 머리 위에 붙어서 펀치를 날리는 황금 사신.
흐~음.
분명 화내겠지.
그래도 재미있을 것 같아.
머리 위에서 곤히 잠든 황금 사신을 떼어서 점액 속에 퐁당.
그 순간.
나처럼 잠들면 웬만하면 깨어나지 않는 황금 사신이 화들짝 놀라서 점액 밖으로 튀어나왔다.
유령화로 점액을 털어버린 황금 사신은 화를 내는가 싶더니, 황금 사신 정원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 진짜로 화났네.
손바닥 위에 다시 소환해 봐도, 등을 돌린 채 나를 돌아봐 주지 않았다.
‘미안해, 이제 웬만하면 안 할게.’
마음을 담아서 쓰다듬기.
계속 쓰다듬고 있으니, 힐끗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웃으면서 머리 위에 달라붙어 왔다.
역시 황금 사신은 착해.
***
불타는 해골 위로 올라왔다.
해골이 크니까, 그 위에 붙은 불꽃도 커다래서 내 온몸이 푹 잠길 정도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이거 인간이 할 수 있는 거 맞나?
아예 불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방염복은 없을 것 같은데….
높은 해골 위에서 붉은 달을 바라보니까, 조금은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붉은 달의 파괴 조건.
<붉은 해골을 사막의 중앙에 배치하고, 불을 붙이고 그 위에서 춤을 춘다.>
붉은 해골은 구했고, 불도 붙였어.
이제 중앙에 배치하고 춤을 추면 된다!
서아랑 같이 연구소로 돌아가면 예린이가 또 새로운 푸딩을 사뒀겠지?
빨리 끝내고 돌아가야지.
사막의 중앙은 붉은 달의 바로 아래.
불타는 해골 위에 걸터앉아, 황금 사신들과 놀면서 붉은 달이 해골 위로 오는 것을 계속 기다렸다.
하지만 붉은 달은 해골 위로 올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붉은 해골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는 듯한 느낌.
붉은 달의 이동 패턴이 바뀌어 있었다.
뭐지? 진짜 해골을 들고 옮겨야 하나?
***
황금 사신 피라미드 밑에 숨어서 뜨거운 달빛을 피해 쉬고 있었다.
뜨거운 달빛이라고 하면 조금 이상한 단어 같지만, 진짜 뜨거우니 어쩔 수 없지.
손바닥 위에는 내 작은 수호천사, 황금 사신이가 앉아 있었다.
황금 사신이 내 손바닥 위를 툭툭 두들겼다.
하늘 위로 집어 던져달라는 신호.
나는 피라미드 밖으로 살짝 나가서 황금 사신을 높게 던질 준비를 했다.
이 작은 황금색 꼬맹이가 인간보다 훨씬 강한 오브젝트라는 건 알고 있지만, 너무 작고 약해 보여서 던질 때는 언제나 조심스러워졌다.
손바닥을 천천히 들어 올려서 하늘로 황금 사신을 휙 던졌다.
인간으로 치면 엄청 무서울 높이일 텐데, 황금 사신은 굉장히 싱글벙글 웃으면서 재밌어했다.
하늘 위에서 빙글빙글 돌더니 체조 선수처럼 짠하고, 멋진 포즈로 착지하는 황금 사신.
“오! 잘했어.”
짝짝, 손뼉을 쳐주고 쓰다듬어 주면 헤실헤실 웃는 사신.
던져줄 때보다 더 기뻐 보이는 표정.
사실 하늘로 떠오르는 게 재밌어서 계속해 달라는 게 아니라, 칭찬을 받기 위해 던져달라고 조르는 건가?
뭐, 그래도 귀여우니 됐지.
나를 빤히 쳐다보며 관심을 갈구하던 황금 사신이 갑자기 고개를 홱 돌리고는 지평선 넘어 특정한 곳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하늘이 갈라졌다.
거대한 붉은 빛기둥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것이다.
그리고 온갖 형상의 오브젝트들이 사방에서 솟아올랐다.
“사신아! 오브젝트가 나타났어!”
나는 황금 사신이를 품에 꼭 껴안고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내 주변에서도 모래로 된 병사들이 잔뜩 솟아올랐다.
나에게 위협적인 오브젝트의 등장을 귀신같이 빨리 발견하는 황금 사신이었지만 이번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 오브젝트들이 나에게 위협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한 걸까?
다행히 지금 튀어나온 오브젝트들은 나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그저 빛기둥을 향해서 달려 나갈 뿐이었다.
한참 동안 빛기둥에 관심을 표하던 황금 사신은 이내 관심을 끊고 나를 쳐다보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
갑자기 왜?
갑작스럽긴 해도 헤실헤실 웃으면서 춤추는 황금 사신은 정말 즐거워 보였다.
***
아 귀찮아.
불꽃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것도 거의 1시간 동안.
밑을 내려다보면 즐거운 표정으로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면서 나를 따라서 춤을 추는 황금 사신들이 보였다.
너희들은 즐거워서 좋겠네.
사실 춤을 추게 된 것은 약간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해골을 옮기는 건 불가능하고, 붉은 달은 다가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이판사판.
에라 모르겠다! 하고서 춤부터 추기 시작한 거였는데, 정답이었다.
머리 위로 스포트라이트가 내려오고 붉은 달이 슬금슬금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다가오는 속도를 볼 때 3시간 정도 춤을 추면 될 듯했다.
춤의 모델은 예전에 사진으로 잔뜩 구경했던, 검은 펭귄의 둠칫둠칫 댄스.
하지만 춤을 춰본 적이 없어서, 꽤 어려웠다.
이제 붉은 달이 내 머리 위에 올 때까지 계속 춤을 추면 끝인 건가? 하고 생각할 때 또 다른 방해 요소가 나타났다.
주변에서 오브젝트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나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모래를 유리로 만드는 불 속에서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춤을 추면서 오브젝트의 방해를 극복해야 한다?
게다가 그전에 빌딩만 한 불 뿜는 해골을 물리쳐야 하네.
이거 인간이 가능한 거 맞아?
아니 가능 여부 이전에, 파괴 방법을 알아채는 것도 불가능해 보여.
다행히 나는 다가오는 오브젝트를 처리할 필요 없이, 춤만 열심히 추기만 하면 됐다.
황금 사신들이 파티를 방해하는 오브젝트는 용서하지 않겠다! 라는 느낌으로 오브젝트를 대신 처리해 줬으니 말이다.
다가오는 오브젝트는 마치 분쇄기에 넣은 것처럼 순식간에 황금 사신에게 갈려버렸다.
3시간.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네.
***
빛기둥이 하늘에서 내려온 뒤로 달빛이 점점 약해졌다.
아마, 회색 사신이가 한 거겠지.
붉은 달이 내뿜는 뜨거운 달빛도 거의 무력해졌다.
이제 기온도 평범한 수준으로 떨어져서 황금 사신 피라미드 속에 숨어 있을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거기다가 사막이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동서남북 어디를 봐도 지평선뿐이던 황량한 사막은 이제 없었다.
이제 사방을 둘러보면 투명한 돔과 그 너머의 익숙한 빌딩 숲이 보였다.
전부 빛기둥이 나타난 뒤로 일어난 현상이었다.
아마 저 빛기둥이 있는 곳에서 회색 사신이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으려나?
빛기둥과의 거리는 꽤 가까워서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혼자서 흥겹게 춤을 추고 있는 황금 사신을 손바닥 위에 올려둔 채, 천천히 빛기둥을 향해서 걸어갔다.
회색 사신을 마중하러 가야지!
***
회색 사신이 없는 회색 사신 격리실에서 춤판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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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황금 사신.
그리고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한 황금 사신을 보고 예린이가 같이 따라 추기 시작한 것이 발단이었다.
물론 황금 사신이의 무한한 체력을 따라 할 수는 없었고, 나와 예린이는 지쳐서 쓰러진 뒤 숨을 몰아쉬면서 TV를 시청했다.
역시 황금 사신이의 돌발 행동이 괜한 것이 아니라는 듯이, 뉴스에서 충격적인 동영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둠칫둠칫.
어색한 동작으로 춤을 추는 회색 사신과 그 주변에서 천진난만하게 춤을 추는 황금 사신.
그 모습을 고화질로 촬영한 동영상이었다.
사막의 중앙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춤을 추고 있는 사신이들이 보였다.
그리고 회색 사신이 춤을 추고 있는 해골 주변에는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있었다.
슈퍼스타 회색 사신?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언니! 언니! 저기 서아 언니가 있어요.”
“아, 다행히 멀쩡해 보이네.”
잠깐 스치고 지나간 영상 속에서 서아의 모습을 발견한 우리들은 한시름 덜 수 있었다.
역시 믿음과 신뢰의 회색 사신이야.
우리 연구소의 수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