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7
버티라고?
지금 내 수준으로 버티는 것조차 가능할지 의심스러운 상대가 저 위에 있는데 버티라고!?
아니 이 허접 병신은 양심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너 때문에 지금 죽을 상황인데 뭐라도 내놔야 할 거 아냐!
그리 따지며 메시지 아래를 보았더니 다른 문구가 적혀 있었다.
[보상 : 단기간의 버프(선지급)]
아. 말을 건 게 아니라 퀘스트를 준 거였어?
그리고 선지급이라니?
저건 또 뭐야.
소울 아카데미를 할 적부터 본 적이 없는 문구를 본 나는 의문을 품었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해소되었다.
몸 안에 차오르는 고양감.
메스가키 스킬의 버프 효과를 받았을 때보다도 더욱 더 커다란, 일종의 전능감이라고 해도 좋을 힘이 느껴졌다.
아하. 뭐야. 허접 주신.
너 평소에 장난감 취급하면서 가지고 놀지만 장난감이 진짜 망가질 상황이 오니까 다급한 거구나?
그러고 보면 지난번에 내가 연금술사한테 뒤질 뻔 했을 때도 끼어들었지.
내가 너한테 재미난 장난감이기는 한가봐?
뭐 어쨌든 준 건 감사히 받겠습니다. 아르마디님.
원래 주신이라면 이 정도는 당연히 챙겨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긴 한데.
이런 투정을 부리면 또 이상한 패널티를 주시겠죠? 그냥 닥치고 있겠습니다.
악신의 사도는 하늘 위에서 자신의 붉은 눈동자 안에 나와 조이를 담았다.
검은 색의 장발.
종아리 근처까지 늘어진 검은 색의 코트.
답답해 보이는 옷 위로도 보이는 위협적인 덩치.
어둠을 담당하는 악신 타리키의 사도.
나크라드.
하아. 처음부터 제일 빡센 놈이 왔네.
“알른 영애. 저건.”
‘조이. 제 뒤에 있어요.’
“얼빵 영애. 내 뒤에서 벌벌 떨고 있어.”
녀석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의 손 위에 마법진을 짜냈다.
나는 마법에 완벽히 문외한이지만 저 마법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았다.
나크라드가 첫 아카데미 습격에서 사용하는 마법은 정해져 있으니까.
차단의 결계.
안과 밖을 완벽히 격리시키는 마법.
아카데미의 교수들이 저걸 부수는 데 몇 분이 걸렸더라.
광장에 가서 첫 습격 이벤트에 참여했을 때 분명 3분을 버텨야 했었지?
3분이라.
평소라면 더럽게 짧다고 생각했을 시간이 왜 이리도 길게 느껴지는 건지 모르겠네.
심호흡을 하며 신성으로 만들어진 방패를 앞에 세우고 메이스를 손에 쥐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갑옷을 입고 올 걸 그랬네.
저 놈에게 지금 내 갑옷이 의미가 있는 모르겠지만.
내가 준비를 마치기 무섭게 나크라드 우리의 앞에 가뿐히 착지 했다.
“흐음. 어리고 약하구나. 축복을 받았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나크라드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한심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본래 이런 아이를 죽이는 건 취미가 아니다마는. 꼬맹아. 너를 선택한 신을 원망하거라.”
‘말씀 안 하셔도 언제나 원망중인데요!’
“언제나 원망하고 있어. 허세 멀대.”
“허세?”
허세 멀대라. 왜 이런 별명이 나온 건지는 대충 알겠다.
나크라드의 디자인이 좀 중2병스럽기는 하지.
눈은 벌겋고 다른 곳은 검은 색으로 가득한데다가 심지어 어둠의 은혜를 받고 있는 놈이다.
유저들도 나크라드라는 이름보다는 중2병 사도라고 불렀으니 중2라는 단어가 허세로 바뀐 거 아닐까.
“허세라. 과연. 아직 힘의 격차조차 파악하지 못하는가.”
나크라드는 그리 말을 하고는 자신의 손 위에 자그마한 검은 색의 구를 만들어내고는 나를 향해 던졌다.
철벽이 위험을 고한다.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내 머리에 위험이라는 단어가 가득 찰 때까지.
<방벽을 쳐라!>
나는 그 속에서 할배의 목소리를 듣고서 신성의 방벽을 펼쳤다.
그리고 그 방벽이 완성된 순간에 내 앞에 있던 검은 색 구체가 터지더니 폭발을 일으켰다.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폭발이 일으킨 바람을 타고서 여러 잔해들이 주변에 흩날린다.
충격을 견디던 방벽에 서서히 금이 가더니 방벽이 박살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위력이 많이 줄었다는 것.
신성으로 만든 방패의 크기를 키운 다음 발에다 힘을 주었다.
버티기 위해서.
내 뒤에 있는 조이를 지키기 위해서.
간신히 폭발이 그친 후에 방패를 살짝 아래로 내리니 자신의 주변에 느긋하게 몇 개의 구체를 더 띄우고 있는 나크라드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도 허세라 생각하나?”
저 구체들이 일으키는 폭발을 견딜 수는 있다.
평소의 나라면 모를까 지금 허접 주신이 준 버프를 받은 상태라면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저건 지금 장난을 치는 것뿐이다.
결계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진심을 담아서 날 끝장내려고 할 터.
그 때 내가 그 화력을 견뎌낼 수 있을까?
‘어떡하죠.’
<어려운 상황이다만… 상대가 유리를 확신하고 있음을 이용해 보자꾸나.>
‘어떻게 한 방을 먹이더라도 그대로 개죽음 당할 것 같은데요.’
<그런 소리가 아니다. 네 도발을 이용해 결계가 부서지는 것에 신경조차 쓰지 못하게 만들자는 이야기지.>
할배의 전략은 이러했다.
상대는 악신의 사도이니만큼 아르마디의 사도인 나를 최대한 굴욕적으로 쓰러트리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니 나크라드가 나를 가지고 놀게 만들도록 유도한다.
메스가키 스킬로 최대한 열이 받게 만들어서 결계가 부서지는 걸 신경 쓰지 못하게 만든다.
구원이 올 때까지 나를 가지고 놀자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쁘지 않네. 할배.
속으로 심호흡을 한다.
입가의 웃음은 자신만만하게.
눈가는 늘어트리고.
조금의 긴장감도 느끼지 않는다는 어깨를 핀다.
“큭♡ 나 같은 여자애한테라도 인정받고 싶은 거야 허세멀대?♡ 자존감 부족의 쓰레기 어른이니까 그런 부끄러운 차림을 하고 있는 거겠지♡”
나크라드의 눈썹이 일자를 이룬다.
녀석은 감정 표현이 부족한 캐릭터다.
저 정도면 무척 심기가 거슬리는 상태겠지.
하지만 이걸론 부족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뭐야 뭐야♡ 허세 멀대 너 지금 네 차림이 멀쩡하다고 생각해?♡ 진짜로?♡ 쓰레기 어른다운 쓰레기 센스네♡”
대답을 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걸까.
나크라드가 구체 중 하나를 던졌다.
이미 그건 예상한 바였다.
미리 장벽을 펼칠 준비를 해두고 있었기에 이번에 내가 펼친 장벽은 방금 전보다 두텁고 튼튼했다.
나크라드가 일으킨 폭발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연기가 걷히고 나크라드의 얼굴이 보인 순간 나는 전력을 다해 웃음을 지었다.
“조금 놀렸다고 폭력이라니♡ 어른이 이렇게 인내심이 없어도 되는 거야?♡ 아~ 허세 멀대는 겉만 늙은 거라 속은 아직 꼬맹이인가?♡”
“시끄럽군.”
“하긴~ 그런 좆밥 어른이니까 좆밥 악신을 믿는 거겠지♡”
내가 악신이란 명칭을 입에 담은 순간 진한 고양감이 차올랐다.
그와 동시에 일자였던 나크라드의 눈썹이 대각선을 이루며 미간이 찌푸려지는 게 보였다.
좋아. 좀 더 가보자.
“좆밥 악신 맞잖아?♡ 그렇지 않고서야 너 같은 허접 찌끄래기 허세 멀대를 사도로 삼았겠어?♡ 땅구석에 처박힌 좆밥이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크라드가 자기 주변에 있던 검은 색 구체를 모조리 던졌다.
걸려들었네.
역시 사도란 족속들은 대개 신앙심이 넘치는 인간들이라 자기가 모시는 신을 욕하면 견디질 못한다니까.
난 폭발을 견디기 위해 장벽을 신성으로 강화하면서 조이를 불렸다.
‘조이!’
“얼빵 영애!”
“…네? 네!”
‘도망쳐요! 제가 시간을 끌 테니까!’
“도망쳐! 저 허세 멀대는 나 혼자서 충분하니까.”
“하지만.”
조이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다.
자신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두려움과 자신의 양심이 다투고 있는 것이리라.
착한 사람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
비시였어봐.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달아나 있었을 걸?
“제발 좀 사라져 줄래?♡ 도움도 안 되는 허접은 방해일 뿐이니까♡”
그리 이야기를 해두고 다시금 방벽에 집중했다.
허접 주신이 준 버프가 꽤 괜찮은 녀석이긴 하네.
늘어난 힘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까 체감이 돼.
문제는 이걸로도 나와 나크라드 사이의 격차를 좁힐 수 없단 거지만.
허접 주신. 도와주려면 제대로 도와주든가.
이 따위로 밖에 안 도와주면 어쩌잔 거야?
폭발이 그치고 연기가 걷힐 즈음 내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고마워. 조이.
내 말을 들어줘서.
혹시 네가 뒤에서 알른 영애!를 외치면서 날 방해하는 히로인이면 어쩌나 걱정했다니까?
“실로 무엄하군.”
연기가 완연히 걷히고 나크라드의 입에서 날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쓰레기 같은 아르마디의 사도 답구나.”
“음침한 좆밥 타리키의 사도보단 괜찮지 않아?♡ 적어도 난 자존감 부족의 병신 어른은 아닌 걸?♡”
“빌어먹을 꼬맹이가.”
“아하핫♡ 화났어?♡ 화났네?♡ 어린 아이의 놀림을 가지고 진심으로 화를 내다니♡ 완전 어른 실격♡”
말을 끝마치기 무섭게 철벽이 위험이 고하는 게 들려왔다.
방패를 치켜들자마자 나크라드가 내지른 주먹이 닿는다.
지금의 몸으로는 견딜 수 없는 압도적인 위력.
이를 악물고서 견뎠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내 몸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몇 번이고 바닥을 구르다 정신을 차리고서 다급히 몸을 일으키던 순간 철벽이 위험을 고했다.
전 방향에서.
어디를 막야아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디를 막더라도 모든 걸 막아내기란 불가능했다.
나는 다급히 철벽이 알려준 최선의 방식으로 방패를 움직였지만 최선은 완벽이 아니었다.
바닥의 그림자에서 어둠으로 이루어진 송곳들이 치솟아 올라 날 공격한다.
그 중 몇몇 개는 방패에 가로막혔지만 그보단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많았다.
“끄흐흡! 끄흑!”
아파.
몸 이곳저곳이 관통 당해서 어딘가 아픈지도 모르겠어.
그저 모든 곳이 아프다고 느껴질 뿐이야.
“이제 주제를 알겠느냐?”
뇌리가 고통이라는 단어로 가득 차는 와중에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애써 무표정한 체를 하고 있는 나크라드가 보였다.
하. 좆같은 새끼.
“흠. 아직 무너지지 않았나?”
그리 말을 하며 나크라드가 손가락을 튕긴 순간 무언가가 내 복부를 꿰뚫었다.
뜨거웠다.
복부에서 흘러나오는 혈액은 용암과 같은 온도를 지니고 있어서 내 살을 지져 검은 재로 만들어 버릴 것만 같았다.
너무도 압도적인 고통에 정신을 놓아버리고 싶은데 내 스킬이 날 놓아주지 않는데.
내 정신을 억지로 붙잡고 세상으로 끌어올리려 든다.
제발 놓아달라고 부탁을 하던 중 스킬말고 어느 우악스런 손길이 내 머리 끄댕이를 붙잡아 끌어 올렸다.
“다시 묻지.”
나그라드의 얼굴이 보인다.
나의 죽음이 보인다.
그의 붉은 눈에 나의 죽음이 비친다.
공포가.
공포가 차오른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 감정이 폭우처럼 내려와 댐을 무너트리려 든다.
그를 무시하고 싶지만 공포의 색은 너무도 짙어서 지워버리고 싶어도 지울 수가 없다.
“답하라.”
답? 무슨 답?
뭘 말해야 하는 거야?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거야?
그를 알 수가 없어 바보마냥 웃음을 지었다.
“허.”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과 함께 내 눈 앞에 검은 색의 구체가 떨어졌다.
아. 씨발.
…
귀에서 이명이 울린다.
삐이이이익 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그와 동시에 할배가 무어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잘 들리지 않는다.
죽는 걸까? 그럴 지도 몰라.
어떻게? 글쎄.
아마 편안한 죽음은 아닐 거야.
이빨이 벌벌 떨렸다.
고통과 함께 등줄기에서 싸늘한 감각이 올라온다.
공포 극복이 그를 가라앉히려 노력하지만 이미 댐은 무너져 버렸다.
황소개구리는 좆됐다는 말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
죽을 거야.
죽는 거라고.
온 몸의 뼈가 부러져서.
장난감마냥 가지고 놀아 지다가.
최대한 치욕스러운 방법으로.
그럴 바에는 차라리 혀를 깨무는 게 낫지 않을까?
자결을 하는 편이 오히려 편할 거야.
그래. 저 놈의 장난감이 될 거라면 차라리.
“아직 죽지 않았음을 안다. 타라키님의 이름을 모욕했는데 편히 보내줄 듯 싶더냐.”
내게 다가오는 목소리가 들린다.
빨리 혀를 깨물자.
죽자.
죽어버리자.
“움직일 수도 없을테니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방금 전의 여자를 데리고 오마.”
여자?
나와 함께 있던 사람?
조이.
조이잖아.
“네가 저지른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지.”
…안 돼. 그건 안 돼.
내 잘못으로 내 최애캐가 죽는다니.
그건. 그런 일은.
체념의 자리에 다른 생각이 끼어든다.
무섭고 아프다는 단어의 사이에 안 된다는 단어가 새겨진다.
그 단어는 점점 더 크기를 부풀리더니 이내 치밀어 오르는 공포를 잠시나마 밀어냈다.
그 순간 정상적인 사고가 끼어들었다.
‘아르마디의 자비.’
몸이 치유됨과 동시에 공포를 막던 댐이 다시금 세워졌다.
하아. 씨발.
좆같은 메스가키 스킬의 패널티.
한 번 참교육 당하면 순식간에 공포에 집어삼켜져 버리니 원.
무너지지 않는 의지랑 공포극복 만으로는 모자란가.
“허접멀대♡”
비틀거리며 일어나 다시 그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다른 곳으로 떠나가려던 놈이 고개를 돌렸다.
“뭐야♡ 겁먹어서 도망치는 거야?♡ 쿡♡ 허~접이네♡”
아직 버틸 수 있어.
난 탱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