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숲 마을은 완전히 잿더미가 되었다. 어느 한 집에서 번지기 시작한 불길은 목조건물이 밀집해서 지어진 마을 특성상 치명적이었다.
그 잿더미가 된 마을 한복판에서 조사와 정리를 위한 연구소 직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잔해를 분류하고, 데이터를 정리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 작업을 하는 직원들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 위에서 분위기가 전혀 다른 두 명의 남성이 작업 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명은 검은색 정장을 갖춰 입은 차가운 인상의 남성. 다른 한 명은 노란색으로 물든 정장을 입은 유쾌한 분위기의 남성.
“완전히 깔끔하게 다 타버렸구만. 뭐 어쩔 수 없지 죄다 목조 건물이니까 말이야!”
타다 남은 잔해들을 이리저리 들춰 보며 노란 정장의 사내가 말했다.
“…”
“서울 숲 마을을 거의 혼자서 만들다시피 하던 한강철도 죽어 버렸고, 마을도 싹 타버렸네. 아마 서울 숲 마을은 이대로 사라져 버리는 거 아닐까? 사람 하나 찾아달라는 의뢰받고 서둘러서 왔더니 이래서야 의뢰 달성이 가능할지 모르겠네. 너희 인력도 많은데 뭐라도 없나? 바이올린같은 거라도 찾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 정보 제공을 원하면 중앙 연구소에 정식으로 요청해라.”
노란 사내는 그런 답이 돌아올 줄 알았다는 듯이 신경도 안 쓰고 주변 잔해 무더기를 열심히 들추면서 돌아다녔다. 무시로 일관하는 검은 정장의 남자도 그런 행동까지 제지하지는 않았다.
“이거 나오는 증언들로만 보면 회색 사신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오던데, 정작 명확한 증거는 없네. 1년 전에도 그랬던가? 정황상 회색 사신의 짓인데, 증거는 하나도 없고. 이번에도 마을 하나 싹 태워 먹은 회색 사신! 이런 식으로 뉴스에 나오는 거 아닐까 몰라.”
“…, 반대되는 증거가 없다면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내릴 뿐이다.”
“아니, 딱히 나무라는 건 아니야. 전자기기 하나 들여 놓을 수 없는 서울 숲이니까 어쩔 수 없지. 저번 보고서에서도 딱 언급했잖아? 정황 증거뿐이라고. 이러다가 사실 전혀 다른 오브젝트가 원인이라고 밝혀지거나 하면 대참사겠지만 말이야.”
잔해 더미를 신나게 뒤적이던 노란 정장의 사내는 까맣게 타고 이리저리 뒤틀린 나무 조각을 들어 올리더니 소리를 질렀다.
“오오오! 있잖아! 바이올린! 이거 바이올린이네. 의뢰인이 찾던 사람이 가지고 있던 바이올린이 맞는 거 같아. 의뢰인에게 할 말이 좀 생길 것 같네.”
“…”
노란 정장의 사내는 이제 사람들에게 이야기 좀 들어 보면서 돌아다녀야겠다며 자리를 훌쩍 떠났다. 검은 정장의 사내는 그에게 눈길을 돌리지도 않고 서류를 작성하며 말했다.
“바이올린이라면 세희 연구소의 이세희 연구소장에게 말을 들어봐라. 아는 게 있을 거다.”
“땡큐~ 그럼 수고해.”
노란 사내는 슬렁슬렁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검은 정장의 남자는 대꾸조차 안 하고 서류철을 탁 덮으며 다시 사건 현장을 둘러보았다. 서류철에는 ‘서울 숲 마을 전소 사건 기록’ 이라고 적혀 있었다.
***
서울 숲 사건 이후, 소란스러운 연구소의 소장실. 그곳에 오예린이 갑작스럽게 도망쳐 들어왔다. 오예린은 분노한 김중뢰를 피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그래서 무작정 여기까지 도망쳐 왔다고?”
“네, 중뢰 선배가 엄청 빡쳤더라구요. 아마 기자들한테 잔뜩 시달린 것 같은데… 서울 숲에서 큰불이 나는 바람에 제가 서울숲 마을에 체류 중이 아니었다는 게 딱 들켜 버렸죠.”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서울 숲의 게이트 방문자 명부에 이름만 적고 그대로 퇴근해 버렸으니 중뢰가 화를 낼 만도 했다. 뭐, 그래도 잔소리 좀 들으면 풀리는 게 중뢰니까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번에 사신이를 중앙 연구소에 뺏기게 될 것 같죠? 이번 여론이 딱 ‘귀여운 강아지’때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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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렇겠지? 근데 중앙 연구소라고 해도 사신을 격리가 가능할지 모르겠네.”
사신과 매우 친하게 지내던 예린은 표정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여론 분위기를 볼 때 중앙 연구소로 보내는 것은 확정된 사항으로 보였다.
연구소는 서울 숲 사건 이후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특히 오늘 게시된 한 인터넷 기사가 큰 영향을 미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극적인 기사를 주로 싣는 3류 인터넷 신문취급이었지만, 1년 전 회색 사신 특집 기사를 낸 뒤로 엄청 유명해진 곳에서 실린 기사였다.
‘데일리 오브젝트’
세희 연구소 사람이라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서 귀찮게 구는 그곳을 몰라볼 수는 없었다.
회색 사신을 팔아먹고 큰 언론사이니만큼 이번 사건에서도 적극적으로 회색 사신 배후설을 밀고 있었다. 그 기사를 보면 회색 사신은 오브젝트들을 조종하는 최종 흑막이자, 이 세계를 비탄에 빠트린 주범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도대체 어떤 인터뷰를 했길래 사신이 부두교 의식을 통해서 불타는 괴물들을 지옥에서 불러왔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아, 이거 중앙 연구소에서 발행한 보고서예요. 연구원 신분이면 자유롭게 열람 가능하더라구요. 소장님은 있는지도 모를 것 같아서 가져 왔어요.”
“음, 그래?”
중앙 연구소에서 발행한 보고서는 이번 사건에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세희 연구소에 우호적인 결론이면 좋겠는데, 그럴 가능성은 없겠지?
오예린은 보고서를 읽는 내 옆에 바짝 붙어서는 같이 읽기 시작했다. 불편했지만 뭐 오예린도 아직 못 봤다고 하니 같이 읽는 수밖에…
‘이번 사건은 신종 오브젝트인 강철 돼지상(가칭)과 회색 사신이 엮인 사건으로 보인다.’
‘강철돼지상에 의해 변이한 사람은 총 8명. 모두 서울 숲에 거주중이던 일가족으로 밝혀졌다. 신체 변형이 심하지만 유전자나 치열등의 변화가 없어서 추적이 수월하게 가능했다.’
‘강철돼지상은 불로 된 경단을 생산하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을 수 없이 맛있는 냄새가 난다는 증언이 많은 것으로 볼 때, 섭취 시 신체 변이를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가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집안에 감금돼 있던 것으로 보이는데, 불경단을 독점하기 위해서 벌인 일로 추정된다.’
‘불경단을 섭취할 경우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일가족이 감금되기 전 마을에서 음식을 입에 넣지 못하고 토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되었다.’
‘괴인은 사람들을 납치한 뒤 살을 찌워서 강철돼지상에 제물로 바친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강철돼지상은 서울숲에서 발생한 집단 폐사 사건과의 연관성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 시시콜콜한 것까지 전부 쓰여 있는 보고서였다. 다행인 점은 회색 사신의 출현은 목격되었지만 명확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쓰여 있었다.
예린은 납치 피해자들의 죽음에 대한 대목에서 좀 놀랐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이번 사건에서 희생당한 것으로 보였다.
하긴 지하실에 쌓인 뼈무더기의 양이 좀 많기는 했었지.
쿵쿵쿵.
묵직한 노크 소리가 울리자, 예린은 화들짝 놀라더니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이 소장실에선 탈출할 길이 없었다. 후후, 이 소장실에는 뒷문같은 건 없단다.
두리번거리던 예린의 시선이 나를 향하자 마주 보며 씨익 웃어 주었다.
“서…설마 소장님. 고자질을…”
“소장님 들어가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들어선 김중뢰는 예린을 붙잡아서는 끌고 가기 시작했다. 예린의 애처로운 비명 소리와 함께 소장실 문이 닫혔다.
***
일련의 사건이 지나간 뒤 다시 한산해진 서울숲 초소, 우중충한 날씨처럼 후임 녀석의 얼굴도 펴지지 않았다.
눈이 아플 정도로 샛노란 정장을 입은 사람이 왔다간 뒤로 계속 저 모양이었다. 유품으로 전달된 까맣게 타버린 바이올린을 안고서는 하염없이 눈물을 계속 흘리는 중이었다. 휴가라도 내라고 해도 무시하고 말이다.
“주아야… 내가 가지 못하게 막았어야 했는데.”
이야길 들어 보니 찾던 사람은 후임의 여동생이었고, 이번 서울 숲 사건의 피해자라고 했다. 사망하는 순간을 목격한 사람도 있어 생존 확률은 절망적이라고 한다.
까맣게 탄 바이올린을 한 손에 들고, 여동생의 뼈로 추정되는 유골함을 품에 안고 중얼거리는 후임의 눈빛은 더 이상 정상으로 보이질 않았다.
“회색 사신이 원인. 회색 사신이 원인. 회색 사신이 원인. 회색 사신이 원인. 회색 사신이 원인.”
후임의 손에는 조그마한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고, 그 안에서는 소위 ‘사이버 렉카’라고 불리는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평소에도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데일리 오브젝트’였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온갖 이유를 갖다붙여서 회색 사신을 악마처럼 묘사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논리적이지 못한 그딴 영상 치워 버리라고 소리 쳤을 테지만 지금 차마 그런 소리를 하지 못했다.
여동생일이니만큼 불쌍하기도 했지만, 지금 저 눈빛에 대고 그런 말했다간 해까닥 돌아버린 후임이 칼로 찔러버릴 것만 같아서 무서웠다.
그저 근무 시간이 빨리 지나기만을 고대했다.
평소에도 그러했지만, 지금은 더욱더 근무가 끝나기를 간절히 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