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2
조이는 루시가 자신을 도와주겠다고 한 것에 두 손을 꼭 쥐었다.
무슨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1년 만에 현 대륙의 유망주라 불러 마땅한 수준까지 성장한 루시다.
그녀의 성장법을 배울 수 있다면 분명 그 옆에 설 수 있을 만큼 강해질 수 있으리라.
루시가 단단히 경고한 것을 보면 그 과정이 그리 쉬울 순 없겠지.
그래도 괜찮았다.
조이도 여태까지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워진 사람은 아니니까.
파트란 가문의 영애라는 직함에 걸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해 온 그녀다.
어지간히 힘든 일이 찾아오더라도 견딜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있었다.
뭐부터 시작을 하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의욕을 내고 있는 조이에게 루시가 설명을 시작했다.
“얼빵 영애. 지금부터 내가 허접한 널 최고의 마법사로 만들어 줄게.”
“알른 영애가요?”
조이는 루시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다.
그걸 의심했다면 애초에 루시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겠지.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한 사람의 파티원으로써 성장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마법사로써 성장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었다.
기사의 가문에서 태어나 기사로써 자라난 루시 알른이 뛰어난 마법사가 되는 법을 알 리가 없잖은가.
“뭐야. 얼빵 영애. 시키는 대로 한다더니 벌써 투정 부리는 거야?”
“아뇨! 그게 아니라.”
“일단 들어. 얼빵 영애. 그리고 마음에 안 들면 따져. 그 정도 인내심도 없는 아가 영애야?”
“…알겠습니다.”
조이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자 루시가 그녀의 앞에 서서는 팔짱을 끼고서 어깨를 쫙 폈다.
자신의 어깨 춤에 오는 자그마한 여자애가 자신만만해 하는 모습이 귀여웠지만 조이는 그를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그러면 독설이 날아들 것 같았으니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얼빵 영애의 허접한 체력을 늘리는 거야.”
“체력이요?”
“그래. 허접 마법사인 넌 지금 짐덩이 영애거든.”
짐덩이.
그 말을 들은 순간 조이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5분마다 1층씩 갱신되던 루시의 던전 기록이었다.
알른 영애는 그 정도 속도를 기본으로 생각하시는 거겠지.
그러니 그를 따라잡기 위한 체력이 필수적이라 여기시는 거고.
루시의 말을 이해한 조이는 고갤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뭘 하면 될까요?”
“얼빵 영애. 일단 뛰어.”
“달리는 거군요.”
우선은 몸을 풀기 위해서 달리라는 걸까?
조이는 루시와 프레이를 따라서 무작정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조이는 뒤쳐졌다.
아무리 오랫동안 수련을 해왔다지만 조이는 마법사.
저들의 각력을 조이가 따라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처음엔 조이도 그를 어떻게든 따라잡아보려고 했다.
“얼빵 영애. 허접 마법사인 네가 날 따라 잡을 수 있을 리 없잖아? 얼빵 얼빵 하면서 천천히 뛰어.”
그렇지만 이를 악무는 조이를 본 루시가 만류했기에 그냥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 달리기로 했다.
조이는 계속해서 달렸다.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났을 때에도.
슬슬 다리가 저려오고 폐에 찢어질 듯한 통증이 들 즈음 조이는 이런 의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몸을 푸시려는 거지?
나 이러다가 몸을 푸는 게 아니라 달리다가 체력이 다 떨어질 것 같은데?
조이가 그런 의문을 품을 무렵 말에 비견될 속도로 내달리고 있는 조이와 프레이가 그녀의 곁을 스쳤다.
“알른 영애!”
“응? 뭐야?”
“언제까지 달리시는 건가요?”
“아핫. 뭐야~ 다리에 힘이 풀려서 부들부들 하는 거야?”
“그 정도까진 아니에요.”
분명 힘들고 지치는 건 사실이지만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흐응. 그래? 그럼 지금 달렸던 것만큼만 더 뛰자.”
그…러니까 1시간을 더?
단언하는 걸 들은 순간 조이의 입술이 굳었지만 루시는 그를 보고서도 얄미운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뭐야. 설마 이 정도도 못해? 인내심이 부족한 허접 아가 영애구나? 우쭈쭈 해줄까?”
“알겠어요. 하면 되잖아요!”
“아하핫. 화났다. 화났다.”
루시가 비웃음을 흐릴며 앞으로 떠나간 뒤 조이는 이를 악물고서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조이는 또 다시 1시간이 지나고 30분이 더 지난 후 지쳐 쓰러질 때까지 달리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루시는 그 후에 프레이가 바닥에 널부러진 후에도 한참을 더 뛰다가 휴식을 취했단 사실이었다.
*
“얼빵 영애. 무슨 수업 듣는 지 말해봐.”
루시의 조언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조이가 듣는 수업 중 뭐가 좋고 뭐가 안 좋은 지에 대해 설명했다.
만약 그 설명이 대충이었다면 아무리 루시를 믿는 조이라도 의심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루시의 설명은 조이가 도저히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자세했다.
조이가 교수의 이름을 읊기 무섭게 그 수업이 무엇이고 수업의 내용이 어찌 되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은 물론이고.
그를 기반으로 어떤 수업이 조이에게 필요하고 필요하지 않은 지에 대해 말해주기까지 했다.
“지금 얼빵 영애에게 가장 필요한 건 많은 마력과 빠르고 정확한 캐스팅이야. 허접 마법사인 얼빵 영애가 많은 마법을 익혀봐야 제대로 다룰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무슨 수업을 듣는 게 좋냐면…”
그 조언은 파트란 가문의 가정교사가 해주었던 설명과 정확히 일치했다.
알른 영애. 진짜로 마법에 대한 지식이 있으셨군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근거 없는 설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해했어?”
“네. 알겠어요. 그럼 이 수업들을 추가로 들으면 되는 거죠?”
“그래. 그리고 체력단련 이외에 얼빵 영애가 해야 할 일을 알려줄게.”
루시가 조이에게 요구한 것은 매일 저녁마다 마력이 바닥날 때까지 무속성의 마법인 염동을 무영창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 방법도 구체적이었다.
처음에는 하나의 구슬을 염동으로 움직이는 걸로 시작한다.
그리고서 그에 익숙해 질 때마다 구슬을 추가하는 것이다.
“얼빵 영애. 네가 단 번에 다섯 개의 물건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때까지 그것만 하는 거야. 이 정도는 얼빵 아가라도 할 수 있겠지?”
조이는 루시의 요구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지 몰랐다.
그렇지만 의심하지 않았다.
일전에 아카데미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루시에게 마법적 지식이 있음을 확인한 조이다.
그런 루시가 무의미한 일을 시킬 리 없으니 그를 따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무작정 루시의 말을 따라서 염동 마법을 사용하던 그녀는 루시가 왜 이를 시켰는지 이해했다.
“염동 마법으로 여러 물건을 다루는 게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집중력을 필요로 하네요.”
염동 마법은 무속성 마법 중에 기초마법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력의 소모량도 작고 영창 없이 마법을 짜내기도 편하다.
허나 이를 조작하는 것은 다르다.
하나의 물건을 띄워서 움직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는 이전에도 지겹도록 해봤던 일이니까.
그렇지만 두 개를 움직일 때는 이야기가 달랐다.
각각의 구슬에 동시에 염동 마법을 사용해서 움직이기 위해서 필요한 집중력은 단순히 두 배가 아니었다.
최소한 세 배. 복잡한 움직임을 취할 때는 네 배 이상의 집중력을 필요로 했다.
당연히 세 개를 동시에 띄웠을 때는 더 심각한 부담이 찾아왔다.
세 개를 모두 다루려다 어느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할 정도로.
“효율적이에요.”
조이는 마력을 다루는 숙련도를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방법은 대개 좀 더 어렵고 복잡한 마법을 사용함으로써 과부하를 가하는 방식이었다.
그만큼 마력의 소모도 컸고, 훈련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짧았다.
허나 루시가 알려준 방식은 달랐다.
염동 마법이 기초 마법인만큼 소모되는 마력의 양은 작다.
그렇지만 소모되는 집중력의 양은 다른 마법에 비견 될 정도였다.
놀랍네요.
루시 알른. 당신은 이 방법을 대체 어디서 배우신 건가요?
여태까지 이런 방법을 제시해 준 마법사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여러 명성있는 마법사 분들도 더 어려운 마법을 능숙하게 다루라고만 했지 염동 마법을 이용한 훈련법 같은 건 제시하지 않았다고요.
설마 이건 알른 영애 당신이 고안한 방식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전 당신을 존경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말이 안 되잖아요.
저도 많은 사람들에게 재능이 있다고.
분명 크게 될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어요.
그런데 알른 영애 당신은 저의 재능을 희미하게 만들어 버리는 군요.
아무리 경험이 많은 기사라 할지라도 마법에 관한 지식을 지니긴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기사가 익혀야 하는 지식과 마법사가 익혀야 하는 지식은 서로 상극에 서 있으니.
두 개를 모두 익히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두 가지를 모두 익혔다 소리치는 이가 있다 하더라도 대개는 어설프게 익히고 허세를 피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허나 루시 알른은 달랐다.
그녀는 분명 마법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평생동안 마법을 익혀 온 조이보다 더 많고 뛰어난 재능을.
아하하. 괜히 아카데미 입학 시험에서 1등을 차지한 게 아니라는 건가요?
당신의 지식이 닿은 곳이 너무 깊고도 넓으니 그게 결과로 나왔을 뿐인 거에요.
“하아. 이래서야 알른 영애의 곁에 대등하게 설 수 있을 날이 오기나 할까요.”
멀다.
너무도 멀다.
그녀의 등이 너무 멀다.
여태까지 진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 그녀의 옆에 서야하는 데.
“노력해야겠네요.”
알른 영애의 재능을 따라잡을 수 있을 만큼.
*
어째선지 모르겠지만 조이에게 훈련 방법을 알려 준 후로 그녀의 눈동자에 존경심이 서려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마법에 대해서 모르는 게 있으면 나한테 질문을 하러 온다.
나는 그저 소울 아카데미에서 마법사 캐릭터를 키울 때 썼던 방법을 알려줬을 뿐이라고!
마법에 대해서 아는 거 쥐뿔도 없어!
조이 네가 물어보더라도 난 아무것도 알려줄 수가 없다고!
속으로 이렇게 비명을 질렀지만 그렇다고 조이에게 모른다는 말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동경이 서린 조이의 눈에 실망을 심어주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난 그 때마다 할배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할배가 다재다능한 성기사였다는 것이다.
과거 용사 파티의 마법사가 해주는 쓸데없이 복잡하고 어려운 마법 강의를 경청해야만 했다는 할배는 조이의 물음에도 별 어려움 없이 척척 답을 해줬다.
문제는 그 답을 해주는 메신저가 나라는 것이고, 그 때마다 메신저를 향한 조이의 존경이 더 커졌다는 거지만.
<여아야. 이러다 내가 알지 못하는 물음이 나오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글쎄요…’
<마법 공부. 해야겠지?>
‘…’
*
그 후로 조이가 루시가 시키는 것에 따라 훈련을 한 지도 며칠이 지났다.
매일 아침 지쳐 쓰러질 때까지 달리면서 체력을 키우고.
수업 시간에 졸지 않으려고 일어나 뒤에서 수업을 듣고.
밤이 되면 마력이 다 떨어질 때까지 염동을 다루다 잠에 드는 나날.
매일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는 자신의 모습에 매일 아침 의욕을 가지고서 잠에서 깨던 조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 새벽의 색으로 물든 천장을 바라보다 얼굴을 쓸어내렸다.
“던전.”
오늘은 루시와 던전에 들어가기로 약속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