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4
내가 관심을 보였기에 선수를 쳤다고?
알새틴의 말을 듣고서 미간을 찌푸렸다.
‘알새틴. 그 말은…’
“정보팔이. 이렇게 형편없는 허접일 줄은 몰랐네. 재주라곤 하나밖에 없으면서 그것도 제대로 못하는 거야?”
아무리 뉴먼 가문이 뒷세계에 깊게 연관된 가문이라고는 해도 말야.
목걸이에 관해 언급한 곳이 여기밖에 없는데 뉴먼 가문이 목걸이와 나의 연관성을 어떻게 알아내냐고.
응?
너희들 쪽에서 유출한 게 아니고서야 불가능하잖아.
양심선언이야?
아니면 매도당하고 싶어서 일부러 미친 짓을 저지른 거야?
“죄송합니다. 알른 영애님. 이에 대한 질책을 달게 듣겠습니다. 다만 일이 시급하기에 먼저 이야기부터 들어주시겠습니까?”
‘말해봐요.’
“무능 정보팔이. 지껄여봐. 그래봐야 네가 허접이란 걸 증명할 뿐이겠지만.”
키득거리는 웃음의 아래에서 알새틴이 침착한 어투로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말씀드려야 하는 사안은 뉴먼 가문 측에서 알른 영애님께 관심을 가진 것이 오래된 일이라는 겁니다. 저희가 뒤늦게 파악한 바로 최소한 4개월에서 5개월가량 전부터 뉴먼 가문은 영애님을 신경 쓰고 있었습니다.”
대략 지금부터 반년 전쯤이라면 내가 루시의 몸에 빙의하고서 얼마 안 되었을 시점 아닌가?
그 때 내가 한 일이라고는 알른 가문 내에서 미친 듯이 수련한 일밖에 없는데?
외부로 나가서 한 일이라면 할배를 얻으러 에반스의 중소던전에 들어간 일일까.
근데 그것도 우리 가문의 기사단이 훈련을 하러간 것뿐이잖아.
그 쪽에서 관심을 보일 이유는 없어.
그것 말고 한 일이라면.
아. 평판작용 퀘스트.
아그라의 저주를 내가 가지고 있던 물약으로 치료한 거.
그를 떠올린 순간 의문이 풀렸다.
앞에서 미리 설명을 했지만 뉴먼 가문은 뒷세계와 깊게 연관되어 있는 귀족 가문이다.
온갖 더럽고 부정한 일을 통해서 부와 지위를 축적한 그 가문은 여러모로 사이드 스토리 쪽에서 비중이 큰 가문이었다.
대개는 안 좋은 쪽으로 연관되어 있었지.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결국에 뉴먼 가문도 사람 사는 곳인지라 평범한 퀘스트도 몇 가지가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뉴먼 가문의 첫째 영식과 관련된 일이다.
뉴먼 가문의 첫째 영식은 아그라의 저주에 위협을 받고 있다.
가문의 당주가 자신의 재력을 쏟아 부어 어떻게든 그 목숨 줄을 붙잡아두고는 있지만 아그라의 저주는 지독하다.
그를 해주하지 못한다면 이외의 모든 행동은 그저 발악이 될 뿐이지.
뉴먼 가문의 당주라 해서 이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는 지금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아그라의 저주를 해주할 방법을 미친 듯이 찾아헤매고 있다.
근데 문제가 무어냐.
아그라의 저주를 해주하게 되면 아그라의 적으로 지정되어 아그라의 위협을 받게 된다는 거지.
지금 내가 그 놈에 의해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넘긴 것처럼.
나야 아그라 그 씹새끼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을 다 알고 있으니까 감당하겠다 마음을 먹을 수 있지만 이 세상의 평범한 사람들은 다르다.
대륙의 사람들에게 아그라는 세상을 멸망시킬 뻔했던 극악무도한 악신이라 여겨진다.
그런 악신의 위협을 받는 걸 기꺼이 받아들일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상대가 아무리 많은 보수를 준다하더라도 내 목숨이 위험해지면 아무런 의미도 없잖아?
그래서 대부분의 실력자는 아그라의 저주를 해주하는 걸 꺼려한다.
자신의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몇몇 인물이 있긴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대개 고결한 성직자다.
그런 사람들이 뒷세계의 거물인 뉴먼 가를 어찌 생각할 지는 뻔하지 않나.
당연히 도와줄 리가 없지.
그렇다고 이 사람들에게 뉴먼 가문이 치료를 강제할 수 있는가.
그럴 리가.
아그라의 저주를 해주할 수 있을 만한 격을 얻은 사람은 대개 홀로 재앙이라 불릴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런 사람을 협박할 힘이 있었다면 뉴먼 가문 스스로 해결을 하지 않았을까.
해주할 사람이 없다면 아이템을 쓰면 되는 거 아니냐.
옳은 말이다.
그 아이템들을 구하기가 더럽게 힘든 게 아니라면.
아그라라는 신격을 억누를 수 있을 정도의 격을 지닌 물건이란 게 쉽게 나올 리가 없잖아?
아무리 넓은 인맥과 많은 돈을 지니고 있더라도 그 물건이 시장에 안 나온다면 의미가 없지.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죽어가는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는 뉴먼 가문의 당주가 얼마나 간절한 상황이겠는가.
그는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무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 상황에서 기적을 일으킨 사람에 대한 소문이 들려와봐라.
혹시나 그 사람이 자기 아들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눈독을 들이지 않겠나.
그런데 신기하네.
평판이랑 무력이 낮은 상황에서 이 퀘스트의 트리거가 뜨면 납치를 당하는 데 말이야.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는 내가 왜 멀쩡히 걸어 다닐 수 있었던 걸까.
알른 가문의 영애여서 그런 건가?
진짜 날이 지날 때마다 귀족 스타트를 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니까.
새로운 것에 굶주려있던 내가 온갖 패널티를 박고 평민이나 노예 스타트를 박았다면 지금쯤 나는.
어후. 생각도 하기 싫다.
게임에서야 게임 오버 문구가 뜨고 나서 끝이지만 여긴 아니잖아.
분명 19금 문구를 달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험악한 광경이 펼쳐졌겠지.
“알른 영애께서 처음 이 곳에 방문하신 순간부터 포착을 당하고 있었으니 저희의 움직임이 영애님의 뜻이라 여기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래서 목걸이를 빼앗겼다는 거야 무능한 정보팔이? 그걸 자랑이라고 하다니. 이마에 허접이라고 쓰고 다니지 그래?”
“죄송합니다.”
대충 상황은 이해했다.
뉴먼 가문 측에서 나를 끌어내기 위해 목걸이를 가로챘다는 거구나?
아무리 알새틴이라 해도 귀족 가문이 전력을 다해 물건을 얻으려 드는데 경쟁에서 이길 리가 없으니.
그가 무능했다기 보단 뉴먼 가문이 빠르게 움직였다고 보는 편이 맞겠지.
‘뉴먼 가문에서 연락은 없나요?’
“뉴먼 그 허접 가문에서 뭔가 보낸 건 없어?”
“아직은 없습니다.”
왜지?
물건을 가져갔으니까 그걸 기반으로 해서 협상을 제시하거나 나를 불러내거나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알새틴이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꺼냈다.
“제 추측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괜찮아요.’
“해봐. 언제까지 무능한 소리만 할 수 있나 궁금하거든.”
“아마 뉴먼 가문은 알른 영애님의 반응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뉴먼 가문은 뒷세계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곳이다.
그러니만큼 자신들의 자취를 감추는 방법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다.
바란다면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을 그 곳이 쉬이 가문을 찾아낼 수 있도록 증거를 남겼다는 것은 지극히 의도적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단서를 가지고서 추측을 해보면 뉴먼 가문은 내가 자신들에게 연락을 하길 바라는 거라 볼 수 있다고 알새틴은 설명했다.
“영애께서 먼저 연락을 한다면 저들은 자신들이 구한 물건이 알른 영애께서 원하는 물건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죠.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뉴먼 가문은 계속 저희를 주시하며 방해공작을 벌일 테니까요. 언젠가는 영애께서 바라는 물건을 얻게 되겠죠.
결국 뉴먼 가문은 알른 영애님이 협상 테이블을 열길 원하는 겁니다.”
거의 싸움을 거는 것처럼 다급하게 움직이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게 그나마 설득력있다는 알새틴의 설명에 할배가 동의를 표했다.
<흔적을 남긴게 의도적이라면 연락을 해오길 바라는 거겠지.>
흐음. 뉴먼 가문도 많이 다급한가보네.
이 상황에서 어떡하면 좋으려나.
단순하게 협상을 해서 목걸이를 받아내는 건 충분히 가능하겠지.
그렇지만 그걸로 만족하고 싶지 않다.
뉴먼 가문은 뒷세계에서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곳이니 만큼 뜯어먹을 것도 많거든.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일에선 내 쪽이 갑이고 뉴먼 가문 쪽이 을인데 목걸이만 받아내고 헤어지면 너무 아쉽잖아.
무슨 방법이 없을까.
그리 고민을 하던 나는 이런 정치에 재능이 없음을 새삼 깨달았다.
어느 하나 그럴 듯한 대답이 나오질 않아.
보통 소설 주인공들 보면 이럴 때에 막 기책을 내놓아서 원래 얻어야 할 것보다 더 많은 걸 얻어내던데.
왜 나한테는 그런 재능이 없는 걸까.
역시 빙의 후에 깽판치는 것도 머리 좋은 놈들이 잘하는 건가.
빌어먹을 세상 같으니라고.
그렇지만 괜찮다.
내게 정치의 재능은 없지만 할배에몽이 있는 걸.
도와줘! 할배에몽!
‘할아버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 목걸이란 것을 찾아오기 위해 어찌해야 하냐는 소리냐?>
‘아뇨. 그거야 당연히 받아오는 거고 그 이상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이에요.’
<그 소리는 상대가 원하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줄 수 있다는 소리렷다?>
‘네. 당연하죠.’
아직은 내가 직접 아그라의 저주를 해주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저주를 해주할 수 있는 물건이 있는 위치를 알고 있으니까.
물건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면 아그라의 저주를 해주할 수 있는 사람과 중개되는 법도 알려줄 수 있고.
간단하게 말해서 어떤 식으로든 해결책을 줄 수 있다는 소리다.
나는 썩은물이니까!
<하나 더 물으마. 네가 바라는 목걸이가 지금 당장에 필요한 물건이더냐?>
으음. 글쎄요.
그 목걸이에서 파생되는 퀘스트를 클리어해서 열등 공자의 호감도를 70까지 올릴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생각해보면.
‘앞으로 두 달까지는 여유를 둬도 괜찮아요.’
<생각보다 급하구나. 그렇다면 상대가 다급해질 때까지 기다리기보단 강하게 나가는 편이 낫겠지. 몇 가지 더 답을 해 다오.>
*
“당주님. 알른 가문의 영애가 보낸 편지입니다.”
“호오. 빠르군.”
뉴먼 가문의 당주.
거스 뉴먼은 자신의 심복이 가지고 온 편지를 보고서 웃음을 지었다.
지난번에 거친 수를 써가며 가지고 온 물건이 알른 영애에게 꽤나 소중한 물건이었나보지.
이렇게까지 빠르게 편지를 보낸 걸 보면 말이야.
입맛을 다시며 편지를 연 거스는 느긋이 편지 맨 위를 살폈다.
‘좆밥 가문인 뉴먼 당주님에게.’
“크흡.”
이거야. 단단히 화가 나셨구만.
알른 영애의 말버릇이 고약한 거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 나한테까지 이럴 줄은.
평소라면 모욕에 짜증을 냈을 거스지만 오늘은 조금도 미간을 찌푸리지 않았다.
상대가 화가 났다는 건 그만큼이나 다급하다는 이야기였고.
그건 거스가 바라는 바였으니까.
허나 그 눈길이 아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점차 거스의 표정은 썩어 들어갔다.
그것은 단순히 편지의 안이 모욕으로 가득 차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랬다면 영애님의 귀여운 투정이라 생각하며 넘겼겠지.
“…이 년은 도대체 뭘 하는 년이지?”
거스가 정색을 한 이유는 그 안에 담긴 것이.
‘악신의 사랑을 받는 약골 영식께선 건강하신가요?’
그의 약점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