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81
무너지지 않는 의지는 여태까지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준 스킬이다.
저 스킬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알른 가문에서의 거친 수련을 견디지 못 했을 테니.
그 뿐일까. 무너지지 않는 의지가 없었더라면 지금쯤 나는 마음이 꺾여 방구석에 처박혀 있었을 거다.
내가 겪었던 무수히 많은 위기들은 평화 속에 살던 현대인이 견딜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게임 속에서는 단순히 즉사 무효의 기능만을 지니고 있던 스킬이 이만큼이나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이 스킬이 한 층 더 진화한다면 어떻게 바뀌는 걸까.
그 어떤 시련을 앞에 두더라도 일어설 수 있게 되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그 어떤 상황이 닥쳐도 초연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당신의 마음은 그야말로 영웅의 것입니다!]
[스킬 ‘무너지지 않는 의지’가 ‘영웅의 기백’으로 진화합니다!]
영웅의 기백?
이거 분명 게임에는 없는 스킬이지?
그럼 이번에 또 새로운 스킬이 생겨난 거네?
[‘영웅의 기백’]
[영웅은 그 어떤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으며. 위기 속에서 기적을 만들어낼 지어니.]
어. 그러니까 대충 앞에 있는 ‘무너지지 않으며.’ 라는 설명은 이전의 기능이 그대로 계승된 거라고 봐야겠지? 어쩌면 과거보다 더 강화된 상태일 수도 있고.
그리고 뒤편에 있는 ‘위기 속에서 기적을 만들어낼 것’ 이라는 문구는 위기에 빠졌을 때에 무언가 발현되는 형식이려나.
자세한 성능을 검증해봐야 알겠지만 대충 추측해 보기로 이 스킬은 분명 좋은 스킬일 거다.
무너지지 않는 의지만 하더라도 상당한 도움이 됐었는데 거기에서 한층 더 강화가 된 거니까.
자세한 설명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뭐어 좋은 게 좋은 거니까.
[타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걸었습니다. 그 고결한 마음에 보상이 주어집니다.]
[‘성인의 길’]
[당신이 기꺼이 선을 행하려 할 때 당신에게 축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이것도 게임 속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스킬이다.
설명이 애매모호하단 것도 방금 전이랑 비슷하네.
대충 해석해 보면 올바른 행동을 할 때 긍정적인 보정이 붙는 거려나.
무슨 느낌인지는 알겠는데 정확히 어떤 식으로 스킬이 기능하는 건지는 전혀 모르겠어.
어떤 식으로 검증을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고.
아아아. 진짜. 아르마디님.
고생한 만큼 어쩌면 고생한 이상의 보상을 지급해 주시는 것에는 감사합니다.
당신이 준 것들 덕분에 무수히 많은 위기를 넘겼으니 어찌 배은망덕한 마음을 품겠습니까.
다만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제발. 게임에 없는 스킬을 지급하실 땐 좀 제대로 된 설명을 적어주시면 안 될까요?
수치를 기재해주는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냥 정확히 무슨 기능이 있는지만 알려 주세요!
이전에 받았던 약점파악만 해도 그래요!
전투 이외에도 여러모로 써먹을 수 있는 갓 스킬이 약점파악이란 스킬인데 검증하기 전에는 그런 것도 모르고 있었잖아요!
어쩌면 지금도 숨겨진 기능이 더 있을 수도 있고요!
지금 이 스킬도 마찬가지에요!
어떻게든 이 스킬의 기능을 파악하기야 하겠지만 이 스킬의 활용도가 그걸로 끝일지 아니면 거기서 무언가가 더 있을지 제가 어떻게 아난 말입니다!
이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잖아요!
클라이언트를 뜯을 수도 없고 집단 지성을 통해 검증할 수도 없다고요!
심지어 상태창조차 없어서 자체적인 검증도 감에 의존해야 하는 게 현 상황인데 왜 자꾸 애매모한 설명을 던져주시는 건가요!
안 그래도 위험해질 일이 많은 것이 당신의 사도일 지언데 스킬의 모든 기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주신의 사도로써 받은 명을 완벽하게 수행했으니 거기엔 마땅한 보상이 있어야 할 터입니다.]
[‘루엘의 메이스’의 숨겨진 기능 ‘용사의 혼’이 개방됩니다!]
[‘용사의 혼’]
[과거 용사가 용사라 불릴 수 있었던 근원. 시간이 지나 흐릿해졌으나 여전히 그 권능은 여기에 남아 있다.]
이제는 아예 추측하는 게 불가능한 텍스트네.
와아. 맨바닥부터 시작해서 검증할 걸 상상하니까 너무 즐겁다!
…
용사의 권능이 뭔데!
최소한 추측할 수 있게라도 해줘야 검증을 하든가 말든가 할 거 아니냐고!
속으로 울분을 토해내다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겠냐. 우리 허접 무능 주신님께선 내가 골머리를 앓는 게 좋으시다는데.
죽어라 구르면서 검증을 해봐야지. 일단 연습모드에서 할배랑 대련을 하면서 여러 가지 확인을.
– 띠링.
이후에 있을 검증절차를 생각하고 있으려니 또 다시 알림음이 울렸다.
아직도 보상을 줄 게 남았어요?
당신께서 생각하시기에도 이번 일의 규모가 꽤 컸나 보네요.
주시겠다는데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 감사히 받겠습니다만 부디 이번엔 제대로 된 설명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발요.
지금도 머리가 아픈데 검증할 게 하나 더 추가되면 얼마나 고생을 해야 할는지.
[어둠의 악신. 타리키가 공을 들인 계획을 무너트렸습니다.]
[여러 신들이 주목을 할 만큼의 위업!]
[당신이 지닌 신성의 격이 한층 더 높아집니다!]
이번에는 그나마 직관적이네요!
부탁을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근데 이거 게임에도 있는 보상이잖아요!
격이 오르면 어떻게 되는 지도 알아! 신성을 사용하는 여러 능력에 보정이 붙는데다가.
…
어라? 이상하다?
왜 갑자기 눈꺼풀이 내려가는 거지?
나 아직 쓰러질 정도로 피곤하지 않은ㄷ…
– 띠링
[당신의 바람을 확인했습니다]
*
예술 교단의 사도에게 뒷일을 맡기고 저택으로 귀환한 후.
요한은 먼저 흐트러졌던 몸가짐부터 정돈했다.
성직자라면 언제나 신께서 보시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으니까.
모든 정비를 끝마치고 다시금 응접실로 향하던 그는 다과가 담긴 쟁반을 들고 조심스레 걷는 페이비를 발견했다.
“성녀님?”
요한이 목소리를 내자 페이비가 어깨를 움츠렸다.
그 여파로 쟁반 위에 있던 찻주전자가 떨어지며 큰 소란이 날 뻔 했지만 그 전에 요한이 주전자를 잡아챘기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주교님! 괜찮으세요?! 엄청 뜨거우실 텐데!”
“괜찮습니다. 신성으로 손을 보호하고 있으니까요.”
주전자를 다시 쟁반 위에 내려 둔 요한이 보란 듯 손바닥을 펼쳤다. 그의 말대로 그 곳에는 아무런 상처도 남아있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뇨. 제가 성녀님을 놀라게 한 거니까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요한은 그리 말을 하며 페이비에게서 쟁반을 가져갔다.
그러자 페이비가 아쉬운 듯 외마디 목소리를 냈지만 그 뿐이었다. 그녀는 얌전히 요한에게 쟁반을 내어주었다.
“아르테아 저택의 시녀를 시키면 될 일일 텐데요.”
“…제가 직접 하고 싶어서요.”
우물쭈물거리던 페이비가 나지막히 내놓은 대답에 요한은 미소를 지었다.
알른 영애께 직접 대접을 하고 수고했단 이야기를 듣고 싶으셨던 걸까.
참으로 아이 같은 발상이군.
성녀의 직위를 지닌 자가 할 일은.
아니라 생각하던 요한은 문득 페이비가 아직 어린 아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아직 채 성인이 되지 못한, 함께 웃으며 이야기 나눌 친구를 고파할 나이란 것을 말이다.
과거의 요한은 이런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페이비란 존재는 그에게 있어 혐오해야 할 대상이었으니까.
현실과 어느 정도 타협하고 있었기에 지켜보고 있다만 언젠가는 없애야 하는 사람. 그것이 요한이 생각하는 페이비였다.
허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한 가지 사건을 마주했기에.
버로우 영지 한 가운데에서 기적을 펼칠 준비를 하던 도중 갑작스레 페이비의 얼굴이 창백하게 물들었다.
이빨이 부딪히고.
식은땀이 흐르고.
다리의 힘이 풀려 지팡이로 간신히 몸을 지탱한 채.
죄송하다는 말만을 중얼거리는 그 모습은 요한이 과거에 마주했던 광경이었다.
악신에게 완전히 잡아먹혔군.
현장에서 일을 할 때에 요한은 악신의 목소리에 잡아먹힌 동료들을 몇 번이나 보았다.
그것은 아무리 심지가 굳건한 자라도 홀로 빠져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다.
당장 젊었던 요한조차도 어둠을 마주하다 미쳐버릴 뻔하지 않았던가.
과거의 경험이 있었기에 요한은 페이비가 악신에게 홀리기 전에 기절시키려고 했지만 그 판단은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그가 손을 움직이려던 그 순간 페이비의 눈동자가 선명히 빛났기에.
그 순간 요한은 굳어버렸다.
인간이 자신의 의지만으로 악신의 주박을 떨쳐냈다.
이미 잡아먹힌 상태임에도 그 지옥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기적이라 불러 마땅한 일을 눈앞에서 보았는데 어찌 냉정을 유지하겠는가.
비틀거리면서도 해야 할 일을 하려 하는 페이비를 본 순간 요한은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
거짓된 성녀일지라도 그 안에 담긴 신앙과 의지만큼은 진짜일 수 있지 않을까.
저 굳은 심지만큼은 분명.
여전히 요한은 하나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부분은 있었다.
지금의 요한은 페이비를 주신 교회의 부정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바라보기로 마음먹었다.
“응접실에 돌아가기 전에 돌려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성녀님께서 영애를 대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요한의 얼굴을 가만 바라보던 페이비는 살짝 양 뺨을 붉혔다가 이내 어색하면서도 밝은 웃음을 지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주교님.”
“별 일 아닙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이전보다 가벼워진 분위기로 응접실 앞에 도착했을 때. 응접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두 사람의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 쪽은 숲의 주인인 리나였고. 다른 한 사람은 루시였다.
리나가 항상 루시를 따라다니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으니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것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루시가 정신을 잃은 채 리나의 품에 안겨 있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영애님?!”
“영애!”
루시가 쓰러졌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
…으으.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
성인이 됐단 사실에 신이 나서 주량도 모른 채 친구들이랑 쓰러질 때까지 술을 깐 다음 날보다도 더 아픈 것 같아.
“정신이 드느냐.”
아픈 머리를 부여잡은 채 어찌저찌 눈을 뜬 순간 내 시야에 매일 밤 보던 얼굴이 들어왔다.
‘할아버지.’
“할배.”
“그래. 나다.”
아. 여기 연습 모드구나. 내가 왜 여기에 있지? 나 분명 허접 주신이 준 보상을 확인하다가.
‘저…’
“할배. 나 쓰러졌어?”
“그렇긴 하다만 걱정할 필요 없다. 신성의 격이 오를 때 일어나는 정상적인 현상이니까.”
내가 고갤 갸웃거리는 것으로 의문을 표하자 할배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쉬이 설명을 하자면 본래 인간의 몸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신성을 받아들이기 위해 변화하는 중이라 해야겠구나.”
아아. 이해했다. 대충 환골탈태 같은 느낌인건가?
물론 지금의 내가 좆밥이란 걸 생각해보면 환골탈태란 단어를 쓸 정도로 대단한 건 아니겠지만.
“시간이 지나 변화가 끝나면 자연스레 깨어날 것이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고 보면 내가 마지막으로 본 문구도 신성의 격이 오른다는 거였지.
…우와. 그럼 응접실에 앉아서 쉬다가 갑자기 쓰러진 셈인가?
한바탕 난리가 났겠네.
페이비랑 요한이 있으니까 별 문제 없단 걸 금방 파악할 테니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그러면요…’
“그럼 일어날 때까지 퀘퀘한 냄새나는 할배랑 있어야 하는 거야?”
“그냥 속으로만 이야기하면 안 되겠느냐? 그래도 소통은 될 텐데.”
‘죄송합니다.’
할배가 정색을 하기에 얌전히 사과를 건넸다.
메스가키 스킬로 가볍게 장난을 쳐 본 건데 너무 정색하신다.
이렇게 속이 좁으니 여자한테 인기가 없지.
어쨌든 다시 정신을 차릴 때까진 연습모드에 박혀 있어야한다는 거네.
마침 잘 됐다.
안 그래도 스킬의 검증을 위해 연습모드에 방문할 생각이었는데.
할배랑 같이 스킬의 검증을.
– 띠링.
음? 뭐지?
알림음이 더 올게 남아 있나?
[‘연습모드’에 ‘튜토리얼’기능이 추가됩니다!]
…이건 또 뭐야?